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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사랑의 실천

  • 영성, 사랑의 실천
웹진 상세 내용
[131호] “첫 마음을 기억해 주세요”
  • 구분 | 201805
  • 카테고리 | 영성, 사랑의 실천
  • 작성일 | 2018-05-03
영성,사랑의 실천 “첫 마음을 기억해 주세요”
이경은 가톨릭대학교 대전성모병원 치과 교수

1월 1일 아침에 찬물로 세수하면서 먹은 첫 마음으로 1년을 산다면, 학교에 입학하여 새 책을 앞에 놓고 하루 일과표를 짜던 영롱한 첫 마음으로 공부를 한다면, 사랑하는 사이가 처음 눈을 맞던 날의 떨림으로 내내 계속된다면, 첫 출근하는 날, 신발 끈을 매면서 먹은 마음으로 직장 일을 한다면, 아팠다가 병이 나은 날의, 상쾌한 공기 속의 감사한 마음으로 몸을 돌본다면, …중략… 이 사람은 그때가 언제이든지 늘 새 마음이기 때문에 바다로 향하는 냇물처럼 날마다 새로우며, 깊어지며 넓어진다. -정채봉





“첫 마음을 기억해 주세요.” 머릿속에서 “딩~” 하고 경종이 울렸다. 2010년 첫 직장으로 입사하며 다짐했던 감정들에 무뎌지고 내가 몸담고 있는 병원의 의미나 존재의 이유를 상실한 채 쳇바퀴 돌듯 찌들어 반복되는 일상이었다. 돌이켜보면 나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이고,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지, 내가 왜 이곳에 있는지 잊은 지 오래였다. 이날 교육을 받기 전에는 부끄럽게도 난 내가 충분히 잘 살고 있고,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2012년 어떤 이끌림에 교리 교육을 받고 세례를 받았고, 수년 전 병원 홍보 목적으로 근교의 성당에서 간단한 검진을 시행하는 본당 홍보 행사에도 열심히 참석했다. 병원 사목회 내에서 봉사 활동 시에도 가능하면 구강 검진 봉사를 했고, 최근에는 2개월에 한 번 정도 시설에 방문해 구강 검진 봉사를 하고 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나는 사랑을 실천하기보다는 사랑을 실천하는 흉내를 내고 있었던 게 아니었나 싶다.

‘또 이념 교육 신청 시기가 왔군.’ PLAN 2018 교직원 이념 교육 알림이 왔다. 2010년 입사 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시행된 이념 교육이다. 솔직히 교육 내용보다는 1시간 남짓 진행되는 교육 시간에 어떤 간식을 줄지, 맛있는 간식이면 좋겠다, 또 교육이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더 컸다. 여러 날짜 중 하루를 택해 신청했고, 교육을 열심히 듣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좀 더 맛있는 간식을 선점하기 위해 약간 일찍 올라갔다. 앞쪽에서 잘 보이지 않는 구석 자리를 잡아 빵과 우유를 먹기 시작했다. 강의는 행정부원장 신부님이 맡아 주셨는데 딱딱하지 않게 이끄셔서 1시간이 어떻게 후딱 지나갔다.





특히 우간다에서 사랑과 봉사를 실천하고 사는 케이티 데이비스(『엄마라고 불러도 돼요?』 저자), 음주 운전자가 낸 7중 추돌 사고로 40번이 넘는 대수술을 받았지만 희망을 버리지 않고 일어선 이지선 씨(『지선아 사랑해』 저자)의 삶은 나를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정기적으로 봉사를 다니며 그곳에 계신 분들의 아픔을 공유하고 안타까워하지만 또 한편으론 그들과 거리를 두려 했고 마음을 다해 사랑하지 못한 나 자신도 있던 것이다. 또한 작은 것 하나하나에도 행복해하고 감사해하면서 백번 다시 물어봐도 사고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이지선 씨의 당당한 모습은 당장 내 눈앞의 일에 급급해 다른 소중한 가치를 놓치고 있는 나를 뉘우치고 돌아보게 했다.

매년 반복적으로 시행되는 이념 교육에서 전인적 치유자가 되어야 한다고 배웠고 또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들어 고통 받는 이들, 소외된 이들, 죄인들, 병자들의 이웃이 되고 사랑하라고 배웠지만 그때뿐이었다. 환자를 대할 때에는 마음이 아닌 머리가 이끄는 대로 단순히 전문적인 지식을 전하고 겉으로만 친절한 언행으로 대했던 나의 모습을 반성하게 되었다. 의료인으로서 나의 작은행위나 말 한마디가 환자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깊이 생각해 보지 못했으며, 환자의 마음을 적극적으로 이해해 보살피기보다는 마치 앵무새처럼 기계적으로 같은 말을 되풀이한 것 같다.

나에게 환자를 육체적으로 치유하고 사랑을 실현할 수 있는 의료 기술이 있다는 사실은 충분히 감사하고 행복한 일이다. 일상에 지쳐 마음이 느슨해 질 때마다 정채봉 시인의 첫 마음을 기억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케이티 데이비스나 이지선 씨의 모습처럼 치유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내 안에 재현하면서 참된 의미의 사랑을 실천하는 길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