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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사랑의 실천

  • 영성, 사랑의 실천
웹진 상세 내용
[제132호] “나의 시간을 조금 나눴을 뿐인데 더 큰‘행복’이 찾아왔죠”
  • 구분 | 201806
  • 카테고리 | 영성, 사랑의 실천
  • 작성일 | 2018-06-04
영성, 사랑의 실천 “나의 시간을 조금 나눴을 뿐인데 더 큰‘행복’이 찾아왔죠” 최경화 성바오로병원 외과중환자실Unit 간호사



최경화 성바오로병원 외과중환자실Unit 간호사

“하느님은 사랑입니다.” 한 달에 한 번, 기관 게시판에 봉사 활동 공지 글을 올릴 때마다 늘 함께했던 메시지.

벌써 20년 하고도 2년이 더 흐른 것 같다. 매달 셋째 주 토요일, 삼삼오오 팀을 구성해 정릉 ‘우리 집 공동체’로 빨래 봉사를 나선 지 말이다.

일 년에 두 번 5월과 10월은 이불 빨래를, 11월은 김장독 파기 내지는 성인 3명은 들어갈 만한 크기의 장독 닦는 일을 했다. 그리고 매달 대청소와 주방 식기류를 열탕 소독하고 락스로 화장실 청소를 했다.

33년 전, 병원에 첫발을 내디딘 후 ‘아픈 분들이 참 많다.’는 것을 느꼈다. 더욱이 이곳 청량리는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않은 환자들이 많은 곳이었기에 몸과 마음이 지치고 힘든 분들을 유독 많이 만날 수 있었다.

넉넉하진 않았지만 큰 어려움 없이 자라 온 나로서는 무엇보다 건강하고 행복하게 직장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과연 지금의 삶에 대한 감사함을 무엇으로 보답하면 될지를 말이다. 해답은 다름 아닌 ‘누군가를 위해 나의 시간을 조금이나마 나누는 것’이었다.

때마침 지속적으로 빨래 봉사를 하고 있는 원내 사목회를 알게 됐고 나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빨래 봉사에 동참했다. 정릉에 위치한 ‘우리 집 공동체’는 오갈 곳 없는, 병들어 있는 남성 25명가량이 거주하는 곳이었다. 지금은 합법적인 절차에 의해 정식으로 후원받을 수 있는 곳이 됐지만 25년전만 해도 어느 한 개인의 헌신적인 사랑으로 운영되고 있었던 곳임을 뒤늦게 알게 됐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일인데, 많은 금액을 후원하는 것도 아닌 그저 고무장갑 하나만 들고 한달에 한 번 내 시간만 조금 나누었을 뿐인데…”.

크고 작은 방 6개와 공동 거실 그리고 집 안에 있긴 했지만시멘트 냄새가 나는 가다듬지 않은 화장실 3개. 현관에 들어서는 순간 역겨운 냄새와 함께 화장실은 눈앞에서 구더기가 꿈틀거리는, 그야말로 매우 낙후된 환경이었다.

하지만 사목회 선생님들의 끊임없는 사랑의 봉사와 여러 후원의 손길이 보태져 가구류며 집기들이 하나씩 자리를 잡아 갔고 화장실도 타일로 깨끗하게 포장됐다. 우리의 심장을 졸여 왔던 구더기도 사라지면서 역겨운 냄새도 없어졌다.

처음 2년여는 그저 선배들을 따라다니며 하라는 것만 열심히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름의 성취감은 물론 현재 삶에 대한 감사함이 커졌다.

또 봉사란 한두 번의 관심과 물질적인 지원이 아니라 지속적인 참여와 진심 어린 마음이 필요하며 또 그래야만이 상대에게 진정한 믿음을 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봉사 활동에 참여한 지 2년이 지나고 어느덧 나는 선교분과장을 맡게 됐다. 이제는 빨래 봉사가 사목회 소속 교직원뿐 아니라 병원 전체 교직원의 관심을 받게 됐고 자녀들도 함께 봉사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봉사 활동을 한 지 햇수로 20년이 되었을 때 나는 의료원에서 해마다 시행하던 CMC 영성구현상 표창 후보자에 올랐고 우수상을 수상하는 영광까지 얻게 됐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일인데, 많은 금액을 후원하는 것도 아닌 그저 고무장갑 하나만 들고 한 달에 한번 내 시간만 조금 나누었을 뿐인데….’

71년의 긴 역사를 자랑하는, 하느님의 사랑을 진정으로 실천하는 이곳 성바오로병원에서의 33년의 삶은 오히려 ‘내인생의 황금기’였다고 말하고 싶다.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직장 생활을 할 수 있고, 봉사 활동을 통해 하느님의 사랑을 조금이나마 실천할 수 있어서 하루하루가 그저 감사하고 행복했으니까 말이다.

아무것도 모르던 내가 사랑을 알게 됐고 그 사랑에 힘입어 나눌 수 있는 삶을 살게 됐고,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 수 있게 됐다.

나와 내 가족 모두 건강한 삶을 살고 있는 지금, 이에 대한 무한한 감사와 찬미 그리고 영광을 우리 모두를 사랑해 주시는 하느님께 돌린다.

“얻어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우리는 행복합니다.” 故 김수환 추기경님을 기억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