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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5호] 두렵고 미안하고 감사하다
  • 구분 | 201809
  • 카테고리 | 여는글
  • 작성일 | 2018-09-05
여는글 두렵고 미안하고 감사하다 김동욱 루카 교수 가톨릭혈액병원장



지난 3월 학교법인의 최종 승인으로 가톨릭혈액병원이 설립되었다. 점차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국내외 의료 환경에 적절하게 대처하기 위해서다. 어떤 분야건 항상 선두를 지킨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과거에 첨단 신기술이었던 조혈모세포 이식도 이제 국내 대형 병원에서는 보편화되었고, 치료 성적의 차이도 점차 좁혀지고 있다. 최근에는 중국 대형 병원들의 추격도 따돌려야 한다.

혈액병원 초대 병원장의 중책을 맡은 지 여섯 달이 지났다. 새롭게 시작해야 할 일도 많아졌고, 병원급 체계를 갖추어 나가는 일로 더 바빠졌다. ‘최초의 혈액병원 설립’이라는 소식은 국내 환자들에게 큰 반향을 불러왔다. 눈에 띄게 신환이 늘었고 외래 대기실과 주사실은 항상 환자와 그 가족들로 북적인다. 이제는 서서 기다리는 환자도 더 많아졌다. 외래 진료실로 들어갈 때마다 두려움과 함께 우리 환자들에게 너무 미안하고 감사하다.

죽음의 문턱에 서서 실낱같은 희망으로 우리 병원을 찾아 더 불편해진 공간에서 장시간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환자·가족들의 절절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동안 치료법의 눈부신 발전으로 많은 이들이 생명 연장 또는 완치를 얻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치료에 실패하는 환자도 있고 평생을 치료받아야 하는 환자도 늘고 있다. 환자 입장에서는 대단히 지난하고 힘든 투병 과정을 이겨 내야만 하는 것이다. 진료실에서 “내가 살아서 아이들을 끝까지 지키고 싶다.”, “목숨 걸고 목숨을 지켜야지!”라는 바람을 듣는 순간, 고통에 처한 환자를 끝까지 희망으로 지켜 내야 한다고 다짐하지만 그럴수록 고민은 더 깊어만 간다.

앞으로 우리 혈액병원이 이들에게 무엇을 더 해 줄 수 있을까? “예수님이 앉은뱅이를 일으키고, 눈먼 사람들을 보게 한 것은 최첨단 의료 기술을 몸소 보여 주신 것 아닐까요?” 웃으며 하신 어느 신부님의 말씀은 우리 혈액병원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잘 제시하는 것 같다. 끊임없이 새로운 의료 기술로 우리를 찾는 환자들에게 다른 병원에서 줄 수 없는 완치의 희망을 주어야 하는 이유다. 환자들은 힘든 투병 과정을 거치면서 더욱 단단해지는 것 같다. 전보다 더 가족애를 표현하기도 하고, 사소한 일로 일일이 감사함을 표현하는 경우도 많다. 난치병을 극복하고 자신보다 더 불행한 이웃을 위해 봉사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어려운 병을 얻은 후, 진정한 삶의 가치와 행복을 찾아가는 것이다.

얼마 전 환자들로 구성된 ‘혈액병원 자원봉사단’이 영성부의 교육을 마치고 출범했다. 다른 환자들에게 삶의 희망을 주는 조력자로서 병원 봉사를 원하는 분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들 대부분은 이식을 받고 완치되었거나, 매일 항암제를 복용하며 좋은 효과를 보이고 있는 분들이다. 혈액암 진단의 아픔을 알기에 그 고통을 나누고 지난한 투병 과정의 반려자가 되고 싶다는 이들의 간절함이 우리 혈액병원에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 줄 것으로 믿는다.

우리 의료진에게도 미안하고 감사하다. 점점 늘어만 가는 환자들에게 희망의 버팀목이 되겠다고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의사 처방 표준화·슬림화, 보험심사팀 병동 근무, 퇴원 예고제, 전원 시스템 구축, 뷰노·혈액병원 인공지능 연구 개발 협약, 기초과학연구원·혈액병원 중개 연구 협약, 서초교향악단·혈액병원 업무 협약 등 그 많은 일에도 열정적으로 힘을 보태고 있다.

우리 병원 태동의 모체였던 여의도성모병원에 대한 연민 때문인가? 순환 진료도 마다 않는다. 혈액병원 설립 후 여의도성모병원 전원·입원 환자도 크게 늘었다. 내년에 개원하는 은평성모병원도 주요 교수들의 순환 진료로 환자를 찾아가는 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이다. 장기 생존으로 나이가 들어 이동이 불편한 환자가 늘고 있고, 혈액병원 교수진의 첨단 진료를 새 병원에도 조기에 정착시키기 위해서다.

대한민국 유일의 혈액병원의 료진으로서 우리를 찾는 환자들을 생각하면 오늘도 무언가 더 새로운 것을 찾아 고심해야 할 것 같다. 미국· 유럽의 회의에서 뵙게 되는 같은 분야 여든이 넘은 석학들의 왕성한 학술 활동은 이제 오십 중반을 갓 넘은 나에게도 큰 자극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