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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사랑의 실천

  • 영성, 사랑의 실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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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5호] 여의도성모병원의 이스라엘 순례기
  • 구분 | 201809
  • 카테고리 | 영성, 사랑의 실천
  • 작성일 | 2018-09-05
영성, 사랑의 실천 여의도성모병원의 이스라엘 순례기

윤형규 여의도성모병원 호흡기내과 교수


영성부원장이신 안 신부님으로부터 이스라엘 순례에 대해 처음 들은 순간 나는 설명되지 않는 흥분과 가슴이 두근댐을 느꼈다. 왜 그랬을까? 순례가 도대체 무엇이기에 왜 내 가슴은 그때 그렇게 설레었을까?
 
순례에 대해 잘 모르지만 순례는 두 가지 속성으로 정의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떠남과 찾음.” 당연하지만 떠나지 않는 순례는 존재할 수 없으며 찾음이 없는 순례는 단순한 여행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왜 무엇을 찾으러 떠나려고 했을까?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 순례를 끝낸 이제 와 생각하면 그것은 바람이었다.

내 인생에서는 늘 사방에서 바람이 불어왔고 지금도 불어오고 있지만, 10여 년 전 어느 날 특별한 바람이 내게 불어왔었다. 그 바람은 편안하고 따스하고 다정했지만 회오리 같은 힘으로 내 영혼의 밑바닥을 드러내 놓았고, 나의 지향점을 180도 바꾸어 놓았었다. 하지만 10여 년이라는 세월이 지나면서 참 많은 일이 안팎으로 닥쳐왔고, 막 뿌려진 믿음은 돌밭에 뿌려진 씨앗처럼 작렬하는 태양에 뿌리가 말라 가고 있었다. 그때 들려왔던 순례라는 단어는 지쳐 있는 영혼에 한 줄기 바람에 대한 기대로 내게 다가왔다. 메말라 가는 영혼의 구조 신호였는지도 모르겠다.

이번 이스라엘 순례를 신부님께서는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하셨다. 첫 부분은 예수님이 주로 생활하시고 공적인 활동을 하셨던 갈릴래아 지방 순례와 잠깐 쉬어 가는 사해 체험, 그리고 예수님이 수난하시고 돌아가신 예루살렘 순례였다. 지역적 위치상 베들레헴 순례가 예루살렘 순례와 같은 시기에 배정되었지만 대부분 예수님이 살아오신 삶의 여정에 맞추어져 일정이 구성되어 있어 보다 실감나는 순례가 될 수 있었다.

10시간의 비행을 뒤로하고 도착한 이스라엘과의 첫 만남은 안식일이었다. 안식일이 저물어 가는 토요일 저녁, 벤구리온 공항마저 썰렁하게 하고 그 유명한 보안 검색도 사라지게 하는 안식일의 위력을 보며 순례의 첫 충격을 이런말로 정리해 가슴에 새겨 두었다. 삶과 신앙이 하나로 일치되어야 하고 될 수밖에 없는 이 땅의 사람들에 대하여….




 
“나와 엘리야는 3000년에 가까운 세월의 간격이 있고 그에게 별 관심이 없던 내게 왜 이런 예상치 못함 떨림이 왔을까? 예상치 못한 이 강렬한 느낌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과연 무엇일까? 나는 이것을 말로는 설명하기는 부족하지만 실존감이라는 단어로 정의해서 가슴에 새겨 두었다.”


이스라엘에서의 첫날 밤을 보내고, 순례의 진정한 시작은 하이파, 카르멜산의 가르멜 수도원과 엘리야 동굴이었다. 솔직히 나는 구약에는 별 관심이 없었던 탓에 심드렁하게 들어가 본 엘리야 동굴은 예상치 못한 강렬한 떨림으로 내 가슴에 울려왔다. 나와 엘리야는 3000년에 가까운 세월의 간격이 있고 그에게 별 관심이 없던 내게 왜 이런 예상치 못함 떨림이 왔을까? 예상치 못한 이 강렬한 느낌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과연 무엇일까? 나는 이것을 말로는 설명하기는 부족하지만 실존감이라는 단어로 정의해서 가슴에 새겨 두었다. 여기에 한 사람이 살고 있었음이, 그가 처절히 부르짖고 끊임없이 갈구했던 영혼의 흔적이 엘리야 동굴의 돌 모퉁이에 남아 나의 영혼으로 전해짐을 확인할 수 있었다.이때부터 느끼기 시작한 강렬한 실존감은 순례여행 중 어디서나 내게 느껴졌고 가장 큰 화두로 자리 잡게 되었는데, 특히 다음으로 찾아간 주님 탄생 예고 성당에서 보다 더 강렬한 울림을 느꼈다.

많은 사람들은 물을 것이다. 그곳이 정말 성지인 것이 맞냐고. 과학적으로, 아니면 역사적으로 증명할 수 있냐고. 자신에게 증명하지 않으면 믿지 못하겠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회의 섞인 의심은 성지에 직접 가 본 후 머리보다는 마음으로, 또 영혼으로 느끼는 강렬한 실존감으로 인해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신앙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믿는다는 것일 것이다. 그러면 무엇으로 믿는다는 것일까? 그 믿음이 과학적, 역사적으로 증명된다면 과연 그것이 신앙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진정한 신앙은 나의 존재가 존재로서 확신하는 무한한 존재에 대한 믿음이 아닐까? 내가 성지순례에서 느끼는 실존감도 이 장소를 통하여 나의 영혼과 절대적인 존재의 활동이 감응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주님 탄생 예고 성당을 나와 아름다운 수도원 정원을 200m 정도 올라가면 성가정 성당이 나온다. 바로 여기가 예수님께서 요셉 성인과 성모님과 함께 사셨던 곳이다. 가만히 생각하니 아래 주님 탄생 예고 성당은 예수님의 외갓집인 것을 성가정 성당에 와서야 깨달았다. ‘예수님은 외갓집하고 참 가깝게 사셨구나.’ 성모님의 심부름으로 외갓집으로 뛰어가는 어린 예수님을 상상하니 인간으로서의 예수님에 대한 전에 느껴 보지 못했던 친밀감이 느껴졌다.

그 순간 바로 이런 것이 순례를 하는 이유라는 것을 깨달았다. 머릿속에서만으로는 절대로 알 수 없는 살아 있는 경험, 나는 이것을 현장감이라고 정의하며 가슴에 새겨 두었다. 한마디로 이번 우리의 성지순례는 주관적인 깨달음인 실존감과 객관적인 현장감이 어우러진 감동의 여정이었던 것으로 정리할 수 있겠다. 가는 곳마다 ‘진짜 여기서 성경의 사건이 이루어졌구나.’ 하는 확신이 들었다.


“중간에 내려 체험한 유다광야, 보이는 것은 오로지 맨살을 드러낸 끝도 없이 펼쳐진 광막한 대지,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오히려 충만해질 수 있는 곳, 아무것도 가질 수 없기에 하느님과 가장 가까워질 수 있는 곳, 나는 잠시나마 광야를 바라보면서 나 자신도 존재의 밑바닥에 접근하는 느낌을 가져 보았다. ”


성지순례의 또 하나의 은총은 현장에서 선포된 말씀에 따라 매일 거행되는 미사였다. 예수님 무덤 성당에서는 성탄절에도 항상 부활 미사가 거행되고 베들레헴 대성전에서는 부활절에도 항상 성탄 미사가 진행되는 성지의 의식. 맨 처음 성지 미사는 성가정 성당에서 신부님과 성모병원 순례 동료 11명, 그리고 가이드인 토마스 아저씨까지 모두 함께 단출하지만 경건하게 봉헌되었다. 이때를 비롯하여 성지 미사에서 느낀 복음의 현장감이 귀국한 지 2달이 넘은 지금도 복음을 들을 때마다 생생하게 느껴지는 것은 비단 나만의 느낌은 아닐 것이다.
 
이러한 현장감과 실존감은 그날 저녁 갈릴래아 호수에 도착하여 여장을 풀면서 최고조에 달했다. 저 멀리 아르벨 절벽 너머로 지던 석양과 해가 지면서 호수에서 불어오기 시작하는 따스하지만 강한 바람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내가 그동안 보아 온 석양 중에서 가장 아름다웠다! 갈릴래아 호수의 저녁 바람을 맞지 않고, 이 호수에서 벌어진 복음을 이해할 수 있을까?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발을 담그고 바람을 맞으면서 내 머릿속 잠들어 있던 성경 말씀이 생명을 얻어 깨어남을 느낄 수 있었다.

순례 첫날 강렬하게 다가온 실존감과 현장감을 가슴에 안고 우리의 순례는 유장하게 진행되었다. 갈릴래아 호수에서 참 많은 곳을 순례하였기에 일일이 다 느낀 점을 얘기하자면 끝이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더욱 기억되는 곳은 처음 방문한 요르단강의 수원지 텔단. 베드로가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한 필리피카이사리아, 예수님의 식탁, 갈릴래아 호수에서의 보트 라이딩, 참행복 선언 성당의 다사로운 분위기, 빵과 물고기의 기적 기념 성당, 카파르나움 성당에서의 미사 등이다. 특히 순례 동료들과 함께한 양고기 바비큐 파티는 잊을 수 없는 즐거운 추억이었다.

그중에서 갈릴래아 호수 전경이 바라보이는 푸른 언덕에 자리 잡은 참행복 선언 성당은 참 아름다웠다. 모든 땅에는 기운이 느껴진다. 나는 이 땅의 기운을 느끼면서, 갈릴래아 북쪽 호숫가가 예수님께서 주로 활동하시고 복음을 선포하실 수밖에 없는 장소라는 것을 절감했다. 그만큼 편안하고 아름다운 기운을 가진 땅이었다. 
 
다음으로 우리는 풍요의 땅 갈릴래아 순례를 마치고 주님께서 거룩하게 변모하신 타볼산과 예수님께서 세례 받으신 세례 터를 거쳐 죽음의 땅, 사해로 갔다. 이에 걸린 시간은 차로 단 두 시간. 죽음과 삶의 간격이 이렇게 가까운 것이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의 의식을 결정하는 것임을 새삼 깨달았다.

예수님 세례 터에서의 감동과 저절로 몸이 뜨는 사해 물놀이의 즐거운 추억을 뒤로하고 예리코, 쿰란을 거쳐 예루살렘으로 향했다. 중간에 내려 체험한 유다 광야, 보이는 것은 오로지 맨살을 드러낸 끝도 없이 펼쳐진 광막한 대지,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오히려 충만해질 수 있는 곳, 아무것도 가질 수 없기에 하느님과 가장 가까워질 수 있는 곳, 나는 잠시나마 광야를 바라보면서 나 자신도 존재의 밑바닥에 접근하는 느낌을 가져 보았다.
 
드디어 예루살렘에 입성했다. 아무것도 아니지만 또한 모든 것인 곳으로 나는 들어갔다. 솔직히 가는 곳마다 모든 곳이 성지인 이곳에서의 감동을 글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땅의 기운이 너무나 따스했던 에인카렘, 예수님이 나신 베들레헴의 예수님 탄생 성당, 충만한 미사를 올린 성 예로니모 경당, 특히 성모님을 가깝게 느낀 성모 수유 성당, 올리브산에 있는 주님 승천 경당, 주님의 기도문 성당, 겟세마네 기념 성전의 바위, 제자들이 있던 동굴 성당 등이 기억에 남는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예수님 부활 성당에서의 철야 기도와 예수님 무덤 안에서 드린 미사에서의 감격을 대신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외람되게도 예수님이 묻히셨던 무덤 안에서 미사를 드리다니, 십자가의 길 10처에서 14처의 현장인 예수님 부활 성당에서 밤을 새워 기도를 드리다니 격에 맞지 않는 은총에 다만 감사할 따름이었다.




새벽에 부활하듯 성당 문이 열리고 여명 속에서 예수님을 염한 바위에 친구하며 다짐했다. 곧 다시 돌아와서 뵙겠다고, 그때는 지금보다 예수님이 보시기에 더 좋은 모습으로 인사를 드리겠다고…. 그 뒤로 십자가의 길, 성 안나 성당, 뱃자타 연못, 시온산, 최후의 만찬 장소 등을 순례하며 우리의 순례 여행은 끝을 맺었다. 8박 9일의 일정이 짧게만 느껴지는 이번 순례 여행은 힘들게 하루하루를 지탱하던 나에게 주님이 주신 은총이었다.

순례기를 마치며 제게 이 모든 기회를 주신 신부님께 감사드린다. 그리고 짧지 않은 순례길 동안에 단 한 번의 분심도 일으키지 않게 분위기를 만들어 준 우리 순례 동료들에게 또한 감사드린다. 그들은 최고의 도반이었다.
 
이스라엘 순례를 마치고 두 달여가 지난 지금, 나의 가슴엔 지쳐 가는 바람이 아닌 생기 있고 따뜻한 바람이 불고 있음을 느낀다. 이제는 알 수 있다. 나의 영혼에 불고 있는 이 바람은 2000년 전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불기 시작했고 그 많은 세월과 사건을 거쳐 나에게 불어오고 있음을,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불 것임을 믿는다.
 
예수님, 언제나 감사합니다. 예수님 보시기에 더 좋은 모습으로 곧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