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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6호] 그저 손을 잡아 주면 좋겠습니다
  • 구분 | 201810
  • 카테고리 | 여는글
  • 작성일 | 2018-10-02
여는글 그저 손을 잡아 주면 좋겠습니다 김용식 안드레아	교수 서울성모병원장 겸 여의도성모병원장



유난히도 무더웠던 여름이 언제인가 싶게 벌써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바람이 뭔가 따뜻한 것을 찾게 하는 가을의 한가운데로 성큼 다가섰습니다.

쌀쌀한 날씨처럼 요즘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의료 환경도 대내외적으로 점점 싸늘해지고 있습니다. 이런 어려운 환경인데도 불구하고 수도권을 중심으로 경쟁적으로 대형 병원들의 건립이 계획되거나 실행되고 있어 앞으로 10년은 남보다 잘하기 위한 노력이 아니라 생존하기 위해 발버둥을 쳐야 하는 것이 병원의 현실입니다. 이런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초대형 대학병원들은 재빠르게 스마트 시스템의 도입, 빅 데이터 구축, AI 연구 등 4차 산업혁명의 한가운데로 에너지를 집중하고 있습니다.

저희 병원도 뒤늦은 감이 있으나 환자들에게 편안함과 신속한 프로세스를 제공하고 의료진에게는 데이터에 손쉽게 접근하고,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최근 스마트 병원을 설립하고 첨단 정보시스템을 도입하였습니다.

저희 병원의 모든 교직원들은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할 때마다 많은 기대를 합니다만 특히 이번 스마트 시스템의 도입은 우리가 바라는 그 이상의 기대를 하게 했습니다.

과연 이런 첨단 정보시스템으로 무장한 스마트 병원은 환우들과 의료진의 만족감을 얼마나 높일 수 있었을까요? 이번에 서울성모병원이 새로운 스마트 시스템을 도입한 후 환자들의 만족도를 살펴본 결과 예상과 달리 진료 시스템이 편안하고 빨라졌다고 답변하면서도 새로운 시스템에 적응하기가 힘들고, 진료실에서는 나아진 것이 없다는 불만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결국, 환우들이 바라는 것은 그저 빠르고 편안한 진료 프로세스가 아니라 진료 그 자체인 것입니다. 대부분의 환우는 몸이 아파지면서 정신까지 지치게 됩니다. 특히 저희 병원처럼 상급 종합병원은 다른 병원에서 고치기 힘든 병을 가진 분들이 대다수며 환자의 절반은 암이나 이식 환자입니다.

모두가 정신적 육체적으로 힘들고 지친 상태이며 경제적으로도 매우 어려운 분들입니다. 이런 분들에게 최첨단 시스템이나 스마트 병원이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고, 얼마나 중요하고 가슴에 와 닿겠습니까?

우리는 의료의 본질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볼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어떠한 첨단 하드웨어나 소 프트웨어도 빠르고 편하게는 할 수 있어도 마음을 치료할 수 없으며 마음을 치료하지 못하면 질병도 치료할 수 없고 병원과 의료진은 신뢰감을 잃게 됩니다.

환우들에게 필요한 것은 따뜻한 위로의 말 한마디와 나을 수 있다는 희망을 전해 주는 의료진의 관심입니다. 진료실에서 환우들을 쳐다보지도 않고 컴퓨터에 기록만 하는 의료진이 아니라 환우들과 눈을 맞추면서 환우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의료진입니다.

과연 의료진들은 어떻게 해야 환우들에게 쉽게 다가가고 환우들의 마음을 치료할 수 있을까요? 저는 30년 전, 당시로서는 큰 수술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진단을 받고 많은 고민을 한 끝에 수술을 결정했지만 수술의 성패가 불투명하고 완전 치유가 불가능하다는 의료진의 말을 들은 상태여서 많이 불안하고 두려운 상태였습니다. 마취가 시작되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 회복실에서 반쯤 깨어난 상태에서 담당 주치의가 제게 다가오더니 제 손을 잡으면서 “수술이 아주 잘되었습니다. 아무 걱정 말고 쉬세요.”라는 말을 듣는 순간 지금까지의 두려움과 막연함이 사라지고 마음이 편해지면서 통증까지 사라졌습니다. 그 순간 제가 얼마나 감사하다고 속으로 외쳤는지 모릅니다. 아마 그 의사는 자신의 행동이 저에게 얼마나 큰 용기와 희망을 주었는지 모를 것입니다.

그 이후로 저는 의사 생활을 하면서 잊지 않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수술을 받으려고 기다리는 환자들에게는 손을 잡아 주면서 “제가 수술하니 아주 잘될 것입니다. 아무 걱정 마세요.”라고 이야기하고 수술을 받은 환자에게는 손을 꼭 잡으면서 “수술이 너무 잘돼서 정상보다 좋을까 걱정입니다.”라고 이야기합니다. 물론 외래에서는 어떤 환자라도 반기면서 의자에 앉으라고 손으로 권하는데, 재미있는 것이 환우들은 제가 의자를 권하는 것이 아니라 손을 내미는 것으로 생각하고 손을 잡는다는 것입니다.

요즘은 의료 기술이 너무 발달하여 웬만한 병이면 어느 병원, 어느 의사한테 가더라도 치료 성적에 큰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차이가 나는 것은 의사가 얼마나 환우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치료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지 그 의지를 누가 얼마나 더 전해 주느냐에 달렸다고 봅니다.

의사나 간호사에게 하느님이 주신 능력과 지혜와 용기를 손을 통해서 환자들에게 전해 주는 것이 의료진이 환우들을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완치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이렇게 손으로 서로 위로해 주고 지혜를 주고 용기를 북돋워 주는 것이 비단 의사와 환자만의 관계에만 있을까요? 아마도 모든 분들이 필요한 것이 희망을 주는 누군가의 손일 것입니다.

저는 최근에는 고령의 부모님을 뵈러 갈 때마다 어머니의 손을 잡아 드립니다. 그 하얗고 통통하던 손이 뼈만 앙상하게 남아 볼품은 없어졌지만 제가 손을 잡아 드릴 때마다 어머니의 눈에서는 감사가, 입가에서는 즐거움이 묻어납니다. 어머니가 아니라 제가 더 행복해지는 그런 은총을 느낍니다.

여러분, 할 수만 있다면 주위의 힘들고 지친 분들의 손을 그저 꼬옥 잡아 주세요. 아마 여러분이 더욱더 행복해지고 마음이 뿌듯해질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