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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사랑의 실천

  • 영성, 사랑의 실천
웹진 상세 내용
[제137호] 포기되는 생명이 없길 바라며
  • 구분 | 201811
  • 카테고리 | 영성, 사랑의 실천
  • 작성일 | 2018-11-06
영성, 사랑의 실천 포기되는 생명이 없길 바라며 박경아 부천성모병원 사회사업팀 의료사회복지사



누군가에게 임신은 축복이 아닌 ‘생명을 포기’할 수도 있는 비극이다. 당장의 생계도 어려운 저소득층 임산부, 원치 않는 임신으로 가족 누구에게도 도움을 요청할 수 없는 미혼모, 자신의 삶도 내려놓은 채 방황하던 중 임신한 노숙인, 미등록 외국인 신분으로 건강보험에 가입되어 있지 않아 검진조차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이주 여성, 전쟁을 피해 온 난민 등이 그 예다.

이처럼 어려운 처지에 놓여 기쁨보단 걱정부터 앞서는 임산부가 매달 1~2명씩 부천성모병원 사회사업팀으로 찾아오고 있다. 출산과 양육의 부담으로 생명 자체를 축복할 수 없는 임산부의 부담을 덜어 주기 위해 취약 계층 산모 산전 검사 및 출산용품 지원 사업 ‘Pre-mom Care(프리맘 케어)’가 생겨났으며, 2018년 1월부터 시행 중이다. 프리맘 케어 사업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임산부를 대상으로 산전 검사비와 출산비, 출산용품, 만 3세까지의 영아 의료비를 지원한다. 지원 대상은 다문화 가정, 이주민, 북한 이탈 주민, 난민, 미혼모에 속하는 임산부이다. 또한, 국내 저소득층 임산부는 건강보험 미가입자, 국가에서 시행 중인 임신 출산 진료비 지원 신청을 못했거나 지원금을 전액 소진하여 자부담이 어려울 경우 지원을 검토하고 있다.

프리맘 케어 사업 대상자의 상당수는 미등록 외국인 근로자나 난민으로, 건강보험에 가입할 수 없어 국제 수가의 고액 의료비가 발생한다. 출산비만 하더라도 수백만 원이기에 산전 진료는 엄두도 내지 못한 채 분만에 임박하여 병원을 찾는 경우가 많다.

올 3월경 히잡을 쓴 예멘 국적의 여성이 만삭의 몸으로 찾아온 적이 있다. 사연을 들어 보니 임신 중 전쟁을 피해 남편과 함께 한국으로 입국하여 난민 신청을 한 상태였다. 전쟁의 위협 속에서도 배 속의 아기만을 생각하며 한국을 찾아왔으나 부부의 난민 생활은 순탄하지 않았다. 정부 차원에서 70만 원가량의 생계비를 지원받고 있었지만 체류 자격상 근로는 불가하였고, 출산 비용은 물론 제대로 된 거처도 마련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분만이 다가옴을 느낀 여성은 평택에 있는 다문화가족지원센터를 찾아가 상담하던 중 우리 병원에 프리맘 케어 사업이 있다는 내용을 전달받았다. 주저 없이 만삭의 몸을 이끌고 2시간 이상을 버스와 전철로 찾아온 여성과 짧은 영어를 주고받으며 지원 절차를 진행하였고, 일주일 후 예쁜 딸을 출산하였다. 다시 찾은 부부는 아기를 안고 이마에 뽀뽀를 하며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다. 총성을 피해 낯선 한국 땅에 찾아와 아기를 낳기까지 누구보다 험난하고 불안했을 여정을 보낸 부부에게 아기는 가장 큰 위로이자 감사의 선물일 것이다. 그렇게 부부는 알라신에게, 나는 주님에게 감사의 기도를 청했다. 국적, 언어, 종교, 문화 등 여러 가지가 달랐지만 새 생명 앞에 선 우리 모두는 같은 마음으로 기쁨을 나눌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프리맘 케어 사업을 진행하면서 많이 들었던 말이 있다. “선생님 결혼하셨어요?”, “선생님께서 아직 결혼을 안 해 보셔서 모르겠지만….”, “선생님께서 아직 애를 안 낳아 보셔서 모르겠지만….” 그렇다. 난 잘 모른다. 기존에 사업을 담당하던 선생님의 육아 휴직으로 대신 맡게 되었으나, ‘결혼’, ‘임신’, ‘출산’을 글과 말로만 배워 온 미혼 여성인지라 내가 만나는 임산부들의 어려움과 필요한 점을 짚어 내기엔 서툴고 어설픔이 있었다. 더군다나 대부분이 비영어권 외국인 산모라 의사소통도 쉽지 않았다. 나 역시 가까운 미래에 혼인과 출산이라는 과업을 달성할 테지만 당장 아기를 낳아 볼 수는 없는지라 여러 ‘어머니’를 통해 주수별 아기와 산모의 변화를 공부했고, 필요한 용품들을 알아 가게 되었다. 처음에는 ‘배냇저고리’, ‘속싸개’, ‘겉싸개’, ‘가제 수건’ 등 아기용품 단어조차 생소하여 용품점에서 주는 대로 사 왔다. 하지만 요즘에는 대상자의 준비 상태를 점검한 후 우선순위를 고려해서 산모별로 필요한 맞춤 지원을 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가톨릭대학교 부천성모병원은 생명 존중의 가톨릭 영성을 구현하고 새 생명 탄생의 기쁨을 함께 나누고자 국내외 취약 계층 임신부를 대상으로 산전 검사 및 출산용품을 지원하는 ‘프리맘 케어(Pre-mom care)’ 사업을 진행 중이다. 사진(가운데)에 보이는 베트남 국적의 이주민 임신부 김안(22세) 씨 역시 임신 후 첫 산 전 검사부터 분만 시 의료비까지 총 1천여만 원을 지원받아 지난 9월 5일 건강한 여아를 출산했다. 김안 씨는 “경제적 어려움으로 산전 검사는 생각하지도 못했는데 부천성모병원 프리맘 케어 사업으로 산전 검사비부터 출산비까지 지원받게 되어 너무 감사하다.”고 전했다. (좌로부터) 부천성모병원 산부인과 신재은 교 수, 김안 씨, 사회사업팀 박경아 사회복지사.

“프리맘 케어 사업 대상자의 상당수는 미등록 외국인 근로자나 난민으로, 건강보험에 가입할 수 없어 국제 수가의 고액 의료비가 발생한다. 출산비만 하더라도 수백만 원이기에 산전 진료는 엄두도 내지 못한 채 분만에 임박하여 병원을 찾는 경우가 많다.”

산모 교육 자료의 번역도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 요청해 뒀다. 의뢰되는 임산부의 대부분은 당장의 생계를 책임지기에도 벅찬 상황에 놓여 본인과 아기에게 필요한 것을 생각해 보거나 찾아볼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출산 후 산모 교육에서 얻게 되는 정보와 프리맘 케어에서 제공되는 물품이 양육 준비의 전부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내 역할이 나름 막중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아직도 부족하고 어설프지만 지금의 과정에서 얻어지는 삶의 지혜와 공감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나눌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사람들은 내게 “사회복지사? 참 좋은 일 하시네요.”라고 말하며 ‘남을 돕는 일’을 한다고 말한다. 물론 어려움에 처한 환자에게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고통 속에서도 다시 일어서는 환자들의 모습을 볼 때면 오히려 내가 희망을 얻고 인생을 배우게 된다. 그래서 사회복지사는 남 돕는 일뿐 아니라 스스로에게도 도움이 되는 참 좋은 일이라 생각된다. 그렇다고 모든 일이 늘 훈훈하게 흘러가는 건 아니다. 가끔 가진 짐이 무거워 생명을 포기하려는 자 앞에 설 때면 나의 잣대로 그 사람의 가치를 판단하고, 외면하고 싶어질 때가 있다. 이럴 때마다 신앙을 시험받는 기회 앞에 섰다고 생각하며, 주님께서는 가장 낮은 곳에서 낮은 모습으로 찾아오신다는 말을 곱씹어 본다. 우리 모두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된 인간으로서 동등한 가치를 가진 소중한 생명이기에 그들을 비난하기보단 가진 짐을 덜어 주어 생명을 포기하는 일 없이 공존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무던히 노력 중이다. 오늘도 생명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CMC 모든 직원들과 함께 생명을 지키는 일에 계속해서 동참하리라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