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여는글

  • 여는글
웹진 상세 내용
[제138호] 하느님의 이름으로!
  • 구분 | 201812
  • 카테고리 | 여는글
  • 작성일 | 2018-12-03
여는글 하느님의 이름으로! 김영국 요셉 신부 학교법인 가톨릭학원 사무총장



요즈음도 가끔 인터넷을 통해 김연아 선수의 경기들을 감상하곤 합니다. 미끄러운 빙판 위에서 어려운 회전 동작이나 활주를 주제음악에 맞춰 특유의 우아하면서도 역동적인 동작으로 표현하는 장면들이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혀 주고 평온하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그중의 하나가 2010년 밴쿠버 동계 올림픽 때의 쇼트프로그램 경기입니다. 아사다 마오 선수가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트리플 악셀(세 바퀴 반 회전)을 성공시키며 자신의 시즌 최고 점수로 경기를 마쳤습니다. 차분히 기다리던 김연아 선수는 성호경을 바치며 경기를 시작하였습니다. 성호를 그으며 경기장 한가운데로 서서히 활주를 시작하는 순간, 같은 신앙인 으로서 더욱더 간절한 마음으로 실수 없이 경기를 마치기를 기도했습니다. 007 영화 속의 제임스 본드 걸의 모습에 딱 어울리게 총을 쏘는 듯한 동작으로 경기를 마무리하였고 시합의 결과는 잘 아는 대로 마오 선수를 압도하였습니다.

성호경은 어떤 기도인가요? 성호경은 짧고 간단하지만 매우 심오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제일 먼저 하느님 아버지의 이름을 부릅니다. 우리는 어디서 왔는지도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지구라는 땅덩이에 우연히 머물다 사라지는 우주먼지가 아닙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낳아 주신 아버지가 계십니다. 우리를 언제 어디서나 돌보아 주시고, 언젠가 당신의 집으로 모이게 하시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이름을 부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상황에 처해 있더라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느님이 우리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하느님 아버지의 외아들의 이름을 부릅니다. 예수님은 삶 전체를 통해 하느님이 우리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알려 주셨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아름답고 고귀한 존재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태 6, 26). 예수님은 동생인 우리를 위해 십자가의 죽음까지도 불사하심으로써, 하느님 아버지가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는 십자성호를 그을 때마다 예수님과 함께 하느님 아버지의 자녀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형이고 오빠이신 예수님이 우리의 든든한 인생 동반자이십니다.

마지막으로 성령의 이름을 부릅니다. 성령은 사랑이십니다. 하느님 아버지와 그 외아들 사이의 영원한 사랑입니다. 모든 것을 내어 주시는 사랑이며 동시에 그 사랑에 모든 것을 걸고 순종하는 사랑입니다. 하느님은 이 사랑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성령의 사랑은 어머니의 사랑의 손길처럼 험한 세상을 살고 있는 우리의 삶의 현장 어디에서나 생명의 숨결로 머무릅니다.

성호경이 힘 있는 기도인 것은 이처럼 내용에 기반을 두고 있을 뿐 아니라, 그 동작에도 기인합니다. 성호를 그을 때 우리 몸에 십자 표시를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위와 아래를 이어 주는 세로줄과 왼쪽 오른쪽을 이어 주는 가로줄로 구성됩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십자가를 통해 온몸으로 하느님과 우리 인간 사이를 이어 주셨습니다. 두 팔을 벌리고 있는 예수님의 모습은 죄를 지어 멸망의 길을 걷고 있는 모든 인간들을 품고자 하시는 하느님의 마음을 절절히 드러냅니다. 그뿐만 아니라 좌우와 동서남북으로 갈라져서 대립하는 인간의 분열을 치유하시고 지성과 감성, 정신과 육체, 남자와 여자라는 이분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 상호 간의 화해를 바라시는 마음을 담고 있습니다. 요즈음같이 불신과 증오로 분열된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참으로 절실한 기도가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성호경이 세상의 모든 일을 내 바람대로 되게 하는 만병통치의 기도는 아닙니다. 그 당시 김연아 선수처럼 좋은 결과를 낼 수도 있지만 때로는 실패할 수도 있고, 생각지도 못한 낭패를 겪을 수도 있지만 성호경을 통해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감을 갖고 당당하게 미래를 꿈꾸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우리의 뒷배를 보아 주시는 분이 다른 누구도 아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이시고,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성령의 사랑을 넘치도록 받고 있는 그분의 자녀들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서서히 저물어 가는 올해를 성호경으로 마무리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