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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사랑의 실천

  • 영성, 사랑의 실천
웹진 상세 내용
[제138호] 소풍 가는 날
  • 구분 | 201812
  • 카테고리 | 영성, 사랑의 실천
  • 작성일 | 2018-12-03
영성, 사랑의 실천 소풍 가는 날 류지현 대전성모병원 약제팀 약사



날씨가 정말 좋은 토요일이었다. 하늘은 뚫린 것같이 파랬고 해는 하얗게 불타 사선으로 내리쬐고 있었다. 오늘은 무슨 봉사를 하게 될까. 야외 활동을 하면 너무 더울 거 같은데 괜찮을까. “같이 갈 사람?” 했을 때 황금 같은 주말에 흔쾌히 따라 나서 준 후배 약사와 함께였다. 약국을 나와 평소와 다른 티셔츠에 늘어진 바지를 입은 우리 모습은 학생처럼 앳되었고 왠지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그렇게 삼삼오오 모인 병원의 다른 부서 선생님들, 그리고 신부님과 버스에 올라탔다.

성모마을 처방이 나오는 날이면 우리 약제 부서는 잔뜩 긴장했다. 몸과 마음이 불편한 환우분들 특성상 약을 빠뜨리지 않고 드시게 하기 위해 대부분의 약을 일일이 까서 한 봉투에 포장한다. 먹기에 불편한 용법들은 교수님과 상의해 단순하게 변경한다. 까다로운 포장에 일수도 길고 일시에 많은 처방이 나오기 때문에 우리는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 내어 퇴근길에 너덜너덜해지곤 했다. 그렇게 병원 조제실에서 처방전으로만 만났던 환우분들이 계신 곳, 원내 약국 투약구로 약을 타러 오신 수녀님 얼굴만 간혹 뵈어 왔던 성모마을이다.

달리는 버스의 차창 밖으로 도로변 나무에 잎사귀들이 부서지는 햇볕에 반짝여 마치 시냇물과 같았다. 반복되는 직장과 집이 아니라 도시에서 외곽, 시골로 차차 변해 가는 풍경에 살짝 설레었다. 어느덧 도착한 목적지. 수녀님의 안내에 따라 조리실, 샤워실과 복도 등 봉사 장소를 배정받았다. 봉걸레로 방바닥을 닦고 작은 물걸레를 들고 다니며 테이블 창틀도 닦았다. 오랜만에 열심히 몸을 움직여 흘려 보는 땀이었다. 한참을 바닥을 닦다 문득 고개를 드니 저 멀리서 후배가 큰 쓰레기통을 옆에 끼고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신부님은 바지를 접어 올리고 봉걸레로 복도를 밀고 계셨고 환우분들 발을 닦아 주는 선생님들, 휠체어를 밀어 주는 교수님도 보였다. 병원 안 사무실, 진료실 또는 병실에서만 환우들과 만나다가 그분들의 공간에 들어와 일하며 어딘가 어색해 보였지만 모두들 뭔가 생기가 있어 보였다.

오늘은 너무 덥고 복도 정비가 덜 끝나서 환우분들과 야외 산책은 힘든 날이었다. 복도에서 함께 휠체어를 끌고 커피를 마시며 말동무는 해 드릴 수 있었다. 환우들과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깔깔거리며 나누었고 복도의 높은 천장에 어느새 누가 봉사자이고 누가 환우인지 모를 정도로 어우러진 우리들의 웃음소리가 비눗방울처럼 번졌다.

생각해 보니 어린 날 소풍이 그랬다. 늘 가는 곳이라곤 계룡산 혹은 보문산, 엑스포공원 등 비슷한 장소에 익숙한 곳이었지만 전날엔 잠이 오지 않을 정도로 설레었다. 단순히 공부를 하지 않고 어디를 놀러 가서가 아니었다. 같이 있으면 늘 편하고 즐거운 친구들, 다정한 선생님들과 일상을 벗어나 다른 장소에 함께 가고 돗자리에 앉아 소소한 음식과 간식을 나누고 보물찾기를 하며 웃고 떠드는 그 시간이 무엇보다 즐거웠기 때문이다. 병원 여러 부서에서 온 선생님들과 직장이 아닌 새로운 곳에서, 내가 가진 사소하지만 누군가의 일상에는 특별할 수 있는 것들을 봉사 활동을 통해 나누고 함께하며 즐거워하는 점이 마치 소풍 같았다.

봉사는 흔하게 나눔에 비유가 된다. 그 나눔은 가진 자들이 주는 자비처럼 묘사되곤 하지만 결국 사람과 사람의 대화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가진 작은 달란트를 나눠 주면 그들은 그에 대답하듯이 자신이 가진 달란트를 나눠 주었다. 여기서 그들은 내가 도움을 주는 이들뿐 아니라 같이 봉사를 나누는 사람들 그리고 나 자신도 포함되는 말이었다. 쉽게 옆 사람과 친해지던 어린 날과 달리 나이를 먹어 갈수록 누군가와 깊게 대화를 시작하기란 여간 쉽지 않았다. 그 대화를 통해 서로와 친해질 수 있고 나아가 거울에 비추듯 나를 알아 갈 수 있음에도 말이다.

그냥 걷기만으로도 벅찬 순간들이 있다. 직장에서의 책임감과 가정에서는 엄마로서, 아내로서 역할에 점점 나를 잃어 가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무엇인가는 열심히 하고 있지만 방향에 확신이 없어 어렴풋이 불안감이 올라오기도 한다. 그래서 거울에 나를 비춰 보고 싶었고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싶었나 보다. 봉사 활동에서 나는 대화의 계기를 찾은 것 같았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열심히 닦은 복도가 반들거렸고 가지런하게 놓인 청소 도구와 목욕 세트들, 예쁘게 말라 가는 쓰레기통과 선반들이 보였다. 환우분들과 나 그리고 함께한 선생님들로 번졌던 그 웃음이 우리의 손길이 닿은 곳에 내려앉아 반짝거리는 것 같았다. 그것은 오늘 아침에 보았던 햇빛 같았고 이곳으로 오던 길의 나뭇잎과 같았고 어린 날 같은 반 아이들과 걸어가던 그곳의 풍경과도 같았다. 봉사 활동은 내게 나눔과 대화의 장인 소풍과도 같은 선물이었다. 나는 나와 같이 미소 짓는 후배에게 말했다.

“오길 잘했지.”
“그러게. 재미있었어.”

그리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한 통의 문자를 받았다. 커피 자판기에 동전을 넣기도 빨대를 제 구멍에 맞추어 넣기에도 여간 어려운 게 아니어서 도움이 필요했던 미소가 예쁜 여환우분이었다.

“또 오세요.”

힘겹게 또박또박 눌러 썼을 네 글자는 그분들도 즐거웠다고 대답하는 것 같았다.

조제실로 돌아온 지금, 성모마을 처방전에 찍히는 하나하나의 이름이 전과 다르게 가까운 곳에서 내 마음을 울리는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