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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0호] 2019년 12월의 촛불
  • 구분 | 201912
  • 카테고리 | 여는글
  • 작성일 | 2019-12-06
여는글 2019년 12월의 촛불 김영국 요셉 신부 학교법인 가톨릭학원 사무총장


올해는 60년에 한 번씩 돌아온다는 황금돼지띠의 해인 기해년(己亥年)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면에서 풍요로우며 밝은 한 해가 될 것만 같은 들뜬 마음으로 첫날을 맞이했습니다. 하지만 다사다난했던 2019년이 저물어 가는 이즈음 기대와는 달리 암울한 현실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짓누르고 있습니다.

새해 첫날을 강원도 양양의 산불이 시작하더니, 4월에는 고성에서 대규모 산불이 발생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보았고, 아직도 그 피해 복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2월에 베트남 하노이에서 2차 북미 회담이 열리기 전까지만 해도 올해 한반도에 무언가 벅찬 일이 일어나리라는 기대를 했었습니다. 하지만 양측의 합의 실패로 북미 관계가 틀어지면서, 차갑게 얼어붙은 남북 관계나 북미 관계는 좀처럼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경기침체가 장기화되고 있다는 우려를 하는 가운데, 7월에 일본이 전격적으로 한국 수출 규제를 발표하였습니다. 우리도 한일 군사정보 보호 협정(지소미아)의 종료를 발표하며 맞불을 놓았고 한일 양국 간의 대립 관계가 얼어붙었습니 다. 8월에는 검찰 개혁이라는 대명제하에 진행된 법무부장관 임명과 관련된 일로 나라의 분위기가 급속도로 어수선해지더니 지금까지 조용한 날이 하루도 없습니다. 진보와 보수라고 하는 기존의 단순한 정치 이념적 대립의 틀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입시 부정, 미공개 정보를 통한 부당이득 등 민감한 내용들이 복합적으로 연루되어 있어서 이 사안에 대한 견해는 갈피를 잡을 수 없을 만큼 복잡해졌습니다.

이해관계가 비슷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저마다 촛불을 들고 거리와 광장으로 나와 자신들의 세를 과시하고 있습니다. 산불로 시작된 올해가 촛불로 마무리를 하려는 모양입니다. 사람들은 어쩌면 촛불을 통해 지금의 어두운 현실을 밝히고 희망찬 내일을 만들고자 하는 마음을 표현하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느 시인의 표현처럼 스스로 자신의 몸을 사르면서 “인간의 맺힌 한(恨)과 원(願)을 구원자에게 알리고 도움을 청하기 위한 성스러운 의식”의 일환이었던 촛불이, 언제부턴가 “맞서는 잇속들이 부딪치는 갈등과 반목의 현장”을 장식하는 도구로 전락해 버린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김기상, 촛불). 스스로를 희생하고 태워야 주위를 밝힐 수 있다는 것은 엄숙한 촛불의 진리입니다. 촛불을 들기 전에 자기희생의 각오가 먼저 서야 하는 이유입니다. 아무튼 많은 사람들이 하루빨리 암울한 여름이 지나가고 새로운 계절 찾아와 힘겨운 현실을 벗어날 수 있기를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를 비웃기라도 하듯 9월에는 아프리카 돼지 열병이 발생했습니다. 질병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수십만 마리의 돼지들이 감염 여부와 상관없이 한꺼번에 살처분(殺處分)되거나 생매장되었습니다. 인간의 복지를 위해서는 동물의 고통을 무시한 채 내려지는 비인간적인 결정들이 두렵기까지 합니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야생 멧돼지들까지는 인간의 무자비한 처분도 어쩌지 못하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 보아야 할까요? 조금 억지스러운 상상이지만, 돼지들이 무분별한 욕심과 맹목적이고 폭력적인 편 가르기를 통해 세상을 더욱더 암울하게 만들고 있는 우리를 대신해서 자신을 희생 제물로 바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황금돼지띠의 해에 돼지들이 우리에게 보내는 작은 선물일까요?

“아기 예수님을 바라보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아기 예수님의 부모의 마음으로 애정을 다해 안아 드리고 싶은 마음이 들기 마련입니다. 세상의 어둠을 밝히고 새로운 희망을 선사하는 것은 이웃에 대한 열린 마음과 따뜻한 배려의 손길입니다. ”

12월은 “세상의 빛”(요한 8, 12)으로 오시는 예수님이 태어나신 달입니다. 성모님과 요셉의 보호 아래 구유에 누워 계신 아기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내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아기 예수님을 바라보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아기 예수님의 부모의 마음으로 애정을 다해 안아 드리고 싶은 마음이 들기 마련입니다. 세상의 어둠을 밝히고 새로운 희망을 선사하는 것은 이웃에 대한 열린 마음과 따뜻한 배려의 손길입니다. 함께 이 땅을 살아가는 모든 이웃들, 특히 힘겨운 현실에 지친 이웃들의 의견에 먼저 귀를 기울이고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던지는 미소야말로 요즈음의 어두운 현실을 밝혀 주는 진정한 ‘촛불’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