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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사랑의 실천

  • 영성, 사랑의 실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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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3호] “이번 알마티 의료봉사, 잘된 건가요?”
  • 구분 | 202003
  • 카테고리 | 영성, 사랑의 실천
  • 작성일 | 2020-02-27
영성, 사랑의 실천 “이번 알마티 의료봉사, 잘된 건가요?” 임연수 부천성모병원 영상의학과 교수



지난해 초 부천성모병원 교직원 중심 자선단체인 성가자선회 회장을 맡고 있는 산부인과 이해남 교수가 제 방에 찾아와서 가을에 있을 카자흐스탄 알마티 의료봉사에 같이 가자는 제안을 하였습니다. 매일매일 판독과 시술에 쫓겨 살고 있어서 한눈 팔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에 우선 거절하였는데, 이 교수는 영상의학과 의사가 꼭 필요하고, 그곳에서 맛있는 거 많이 먹을 수 있다는 압박과 회유로 마음을 바꾸도록 저를 유인하였습니다.

사실 저는 진료 봉사를 잘 가지 않았습니다. 국내 진료 봉사인 경우 환자를 직접 보는 과가 아니어서 참여의 기회가 적었고, 막상 갔을 때 필요한 의료봉사를 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수년 전 해외 봉사를 가 본 경험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참담하게 살고 있는 현지인의 실상은 다녀와서도 마음을 아프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좀 자세히 얘기하자면 콩고민주공화국의 의사들에게 초음파를 가르치는 일이었습니다. 그곳 병원은 깨끗했고, 의사들의 열정은 저에게 좋은 자극을 주었지만 거리를 배회하고 있는 수많은 현지 젊은이들, 동양인이나 백인을 볼 때마다 구걸하는 어린이들의 모습, 대부분 주민들은 하루 1달러에도 못 미치는 수입으로 살고 있다는 얘기도 충격이었지만, 그곳에서 20달러가 넘는 한 끼 식사를 하고 있는 저의 모습이 정신적으로 혼란스럽게 만들었습니다.



“이번 의료봉사를 준비하면서 우리는 수차례 준비 모임을 하였습니다. 목표 설정에서부터 필요한 인원과 물품 준비 등 회의를 진행할수록 구체적인 내용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일부 시행착오가 있었던 이전 두 차례의 경험도 도움이 되었습니다.”

게다가 많은 의료기관에서 해외 의료봉사를 다녀오고 있습니다. 어쩌면 경쟁적으로 가는 인상마저 있습니다. 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의료봉사가 그곳에서 어떤 의미인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진정 그곳에 도움이 되는 의료봉사를 하고 있는지 의문이 듭니다. 실제로 일부 나라에서는 의료봉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의료봉사의 주된 참여자는 봉사에 참여하는 의사를 비롯한 봉사자이겠고, 현지에서 진료를 받는 현지인들이겠지요. 그리고 부수적으로 이런 행사를 통해 영향력을 키우려는, 또는 경제적 이득을 얻으려는 여러 기관이나 개인이 있을 것 같습니다. 이들 주체마다 의료봉사의 목표는 다를 것입니다. 이중 최고의 목표는 의료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현지인에게 도움이 되는 치료를 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현지인에게 필요한 의료를 제공하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현지 의료기관의 의료 서비스 수준이나 제공 정도는 나라마다 편차가 심하기 때문에 성공적인 의료봉사가 되기 위해서는 준비 단계부터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명확히 파악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여겨집니다. 수술 장비를 가져가서 수술까지 하는 봉사에서부터 사무실에서 상담 위주의 봉사를 하는 경우까지 다양한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 봉사에 참여하는 의사나 간호사를 비롯한 여러 의료 직종에 근무하시는 봉사자분들은 개인적으로 시간 및 돈을 들여서 참여하고 있습니다. 참여하면서 투자한 비용 이상으로 보람이나 자긍심 등 성과를 얻고 싶어 합니다. 애써서 왔는데 현지에서 필요한 것을 제공하지 못하면 허탈할 것입니다. 이런 문제로 인해 준비 단계부터 명확한 목표를 설정해야 합니다.

이번 의료봉사를 준비하면서 우리는 수차례 준비 모임을 하였습니다. 목표 설정에서부터 필요한 인원과 물품 준비 등 회의를 진행할수록 구체적인 내용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일부 시행착오가 있었던 이전 두 차례의 경험도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전에도 참여해서 경험이 풍부한 단장 이해남 교수가 큰 줄기를 잡았고, 각 과마다 세부적인 준비를 하였습니다. 카자흐스탄은 중앙아시아에 위치하는 국가로 1인당 GDP는 만 달러 정도이며 알마티는 얼마 전까지 수도였고, 현재도 제일 큰 도시로 의료 서비스가 어느 정도 제공되고 있는 도시입니다. 전반적으로 우리나라보다는 경제적으로나 의료적으로 열악하지만 아주 후진국이 아니기 때문에 기본적인 의료는 제공되는 상황입니다. 이전에 의료봉사에 왔었던 환자들은 자국 내 의료 서비스에 대한 불만이나 불신이 있어서 외국 의료인을 통해 본인의 질병이나 치료에 대한 선진 지식을 얻고자 하는 바람이 크다는 정보는 이번 의료봉사의 주된 목표 설정의 근거가 되었습니다. 직접 진료와 치료는 최소로 하고 상담 및 검진 위주의 진료를 하기로 하였습니다. 복부 질환을 위해 외과 및 영상의학과, 부인과 질환을 위한 산부인과, 심장 질환을 위한 심장내과, 두경부 질환을 위한 이비인후과 등 의사 5명이 참가하였고, 초음파 장비는 3대(심장, 복부, 여성)를 가져갔습니다. 안내와 접수, 약국, 진료 보조를 위한 인력, 신부님과 수녀님 등 총 15명으로 구성된 봉사팀이 구성되었습니다.



“이번 봉사 형태가 정답은 아닐 것입니다. 부족함도 있었을 것입니다. 다만 이번 경험은 개인적으로 봉사 정신을 올리고 봉사에 대한 두려움이나 회의감을 줄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카자흐스탄에 10월 4일 밤 도착하였는데 줄인다고 해도 거대한 짐으로 인해 입국 시 세관 통과에 약간의 지장이 있었지만 현지 교민의 도움으로 무사히 통과하였습니다. 다음 날 오전에는 진료를 준비하였고 오후부터 8일 오전까지 6회의 진료로 총 341명의 현지인들이 진료를 받았습니다. 저는 평소에 초음파검사를 하는 경우 힘들어서 한 번에 25명을 넘지 않고 일주일에 한두 번밖에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총 152명에게 초음파검사를 하였는데 한 번에 30명 전후를 오전과 오후에 걸쳐 나흘 동안 연달아 검사했습니다. 통역이 있기는 했지만 말도 잘 통하지 않고, 몸집도 큰 분들이 꽤 계시다 보니 기진맥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초음파 보조를 잘해 주신 영상의학팀 서경석 팀장 덕분에 그나마 무사히 마쳤던 거 같습니다. 자랑은 아니지만 평소에 운동으로 체력을 관리했으니 마지막 날까지 검사가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옆에서 심초음파검사를 했던 순환기내과 박찬석 교수도 밀려드는 환자로 인해 고생이 많았습니다. 단장의 의지로 저와 박찬석 교수를 참여시키면서 검진이 강조된 봉사였는데, 방문해 주신 현지인들에게 직접 물어보지는 못했지만 마지막 날까지 이어진 도떼기시장 같은 광경을 통해 현지인에게 필요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았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지막 날 저녁 식사를 하면서 이번 의료봉사에 대한 각자의 소회를 나누는 자리가 있었는데 “몸은 힘들었지만 보람되었다.”, “피정 온 것처럼 정신적 힐링이었다.”, “봉사를 통해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팀워크가 좋았다.” 등 봉사자로서도 만족스러운 경험을 모두 얘기하였습니다. 명확한 목표 설정, 철저한 준비 및 실행으로 봉사에 참여한 봉사자, 현지인 모두에게 만족감을 줄 수 있다는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완벽한 준비를 위해 수녀님을 비롯한 사회사업팀의 수고도 빼놓을 수 없는 성공 조건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루하루를 미사로 시작하면서 정신적인 힘을 주신 신부님의 수고도 컸습니다. 표정을 통해 추측해 보지만 현지와 연결 고리로서 준비에서부터 많은 도움을 주신 현지 한국인 수사님과 고려인 동포분의 만족감도 높아 보였습니다.

봉사 기간 동안 다양한 현지 음식을 경험하였는데 몸으로 느끼는 만족감도 좋았습니다. 카자흐스탄은 지역적으로 동양과 서양의 중간에 있고 여러 인종이 섞여 살고 있어서 다양한 음식이 있습니다. 특히 말고기 요리가 유명한데 입안에서 살살 녹는 말고기 요리는 진미였습니다. 나중에 말고기 먹기 위해 카자흐스탄 봉사에 간다고 해도 과한 말은 아닐 것입니다.

이번 봉사 형태가 정답은 아닐 것입니다. 부족함도 있었을 것입니다. 다만 이번 경험은 개인적으로 봉사 정신을 올리고 봉사에 대한 두려움이나 회의감을 줄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다음 기회가 있다면 적극적으로 참가하겠다는 의지가 생겼습니다. 목표 설정에서부터 구체적 실행까지 좋은 경험의 기회를 제공한 이번 알마티 의료봉사팀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