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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7호] “한 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
  • 구분 | 202007
  • 카테고리 | 여는글
  • 작성일 | 2020-07-06
여는글 “한 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창세 1,1) 안재현 미카엘 신부 서울성모병원 영성부장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찬미받으소서」를 다시 펼쳤습니다. 우리 ‘공동의 집’인 지구를 돌보는 것에 관한 회칙입니다. 지난 2020년 5월 16일부터 24일은 회칙 반포 5주년 기념 주간이기도 했습니다. 코로나19를 겪으며 신음하는 우리에게 더없이 필요한 말씀들이었습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상징적이고 서사적인 고유한 언어로 표현된 창조 이야기는 인간의 실존과 그 역사적 실재에 대한 깊은 가르침을 담고 있습니다. 이러한 설명은 인간의 삶이 근본적으로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 세 가지 관계, 곧 하느님과의 관계, 우리 이웃과의 관계, 지구와의 관계에 기초를 두고 있음을 암시합니다. 성경에 따르면 이 세 가지 핵심적인 관계는 이 세상과 우리 안에서 깨어졌습니다. 이러한 불화가 죄입니다. 창조주와 인류와 모든 피조물의 조화는 우리가 하느님의 자리를 차지한다고 여기고 피조물로서 우리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아서 깨어졌습니다. 결국 이는 이 땅을 ‘지배’(창세 1, 28)하는 우리의 임무, 곧 ‘그곳을 일구고 돌보는’(창세 2, 15) 임무를 왜곡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인간과 자연이 맺은 본디의 조화로운 관계가 충돌하게 되었습니다(창세 3, 17~19 참조)”(66항).

인간이 자신도 하느님의 피조물이라는 그 자리를 망각하고 한계를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하느님과 이루는 조화로운 관계가 깨어졌습니다. 다른 피조물들을 ‘일구고 돌보라’는 임무도, 하느님과 이루는 조화로운 관계를 기초로, 인간이 지구와 맺는 관계입니다. “‘일구다’라는 말은 밭을 경작하고 갈거나 밭일을 한다는 뜻이고, ‘돌보다’라는 말은 보살피고 보호하며, 감독하고 보존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인간과 자연이 서로 책임을 지는 관계를 의미합니다. 모든 공동체는 생존에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 풍요로운 땅에서 얻을 수 있으면서도, 동시에 이 땅을 보호하고 후손들을 위하여 이 땅이 계속해서 풍요로운 열매를 맺을 수 있게 해야 하는 의무도 있습니다. ‘땅은 주님의 것입니다’(시편 24, 1 참조). 그래서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신명 10, 14)은 주님의 것입니다”(67항). 세상 만물과 하느님의 모습대로 창조된 인간도, 모두 하느님의 것입니다.

주일에 미사를 드릴 때나 성호를 긋고 묵주기도를 바치기 시작할 때 이렇게 고백합니다. “전능하신 천주 성부, 천지의 창조주를 저는 믿나이다.” 전능하신 하느님 아버지께서 세상 만물을 창조하신 주님이심을 믿는다고 고백합니다.

이 세상은 하느님께서 창조하셨음을 믿는다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창조’가 무엇입니까?

“창세기에 나오는 상징적이고 서사적인 고유한 언어로 표현된 창조 이야기는 인간의 실존과 그 역사적 실재에 대한 깊은 가르침을 담고 있습니다. 이러한 설명은 인간의 삶이 근본적으로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 세 가지 관계, 곧 하느님과의 관계, 우리 이웃과의 관계, 지구와의 관계에 기초를 두고 있음을 암시합니다.”

‘창조’는 어떠한 재료를 가지고 새로운 무엇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닙니다. 창조는 ‘무(無)로부터의 창조’(가톨릭교회 교리서, 296항 참조)입니다.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음은, 하느님의 창조로 세상이 비로소 無에서 有로 ‘존재’하게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창조’는 결코 인간이 기술이나 재료를 가지고 어떤 사물을 만들어 내는 행위가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이미 존재하는 물질로 세계를 만드셨다면 특별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인간 장인도 재료를 주면 자신이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듭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전능은 바로 무로부터 당신께서 원하시는 모든 것을 만드신다는 데서 드러납니다”(안티오키아의 성 테오필루스). ‘창조’는 전능하신 하느님만이 하실 수 있는 하느님의 고유한 행위입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그 ‘창조’에, 우리 인간이 협력하게 하셨습니다. ‘창조’에 협력할 수 있게, “하느님의 모습으로”(창세 1, 27)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당신께서는 존재하는 모든 것을 사랑하시며, 당신께서 만드신 것을 하나도 혐오하지 않으십니다. 당신께서 지어 내신 것을 싫어하실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당신께서 원하지 않으셨다면 무엇이 존속할 수 있었으며, 당신께서 부르지 않으셨다면 무엇이 그대로 유지될 수 있었겠습니까? 생명을 사랑하시는 주님, 모든 것이 당신의 것이기에 당신께서는 모두 소중히 여기십니다”(지혜 11, 2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