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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사랑의 실천

  • 영성, 사랑의 실천
웹진 상세 내용
[제159호] 어린이들이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말고 그대로 두어라. 하늘나라는 이런 어린이와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 구분 | 202009
  • 카테고리 | 영성, 사랑의 실천
  • 작성일 | 2020-09-02
영성, 사랑의 실천





“카톡!” “카톡!”

핸드폰에서 연달아 메시지가 왔음을 알리는 알람에, ‘자정이 가까워 오는 시간에 누굴까?’ 궁금한 마음으로 폰을 열어 보았다.

꽃과 성모님의 사진으로 도배가 되어 있는 카톡의 대문 사진만으로는 톡을 보내시는 분이 누구신지 알기 어려워 천천히 메시지를 읽기 시작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문자를 썼다 지웠다, 반복하다가 용기 내서 보내 봅니다. 기억하시지요? 선생님이 예뻐하던 민하엄마예요. 민하가 감사 인사 드리라고 해서요.”

문자를 보고 나서야 백 일 전 일반 병동 1인실에서 항암 치료를 받다가 가족들의 사랑 속에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간 초등학교 5학년, 씩씩한 민하의 엄마로부터 온 카톡임을 알 수 있었다.

자정이 넘은 시간이긴 했지만, 어머니가 큰 용기를 내서 문자하신 것을 생각하니, 카톡보다는 전화 통화가 나을 것 같아, 보이스톡을 해 보았다

민하 어머니는 내 전화를 기다렸다는 듯이 반가운 목소리로 전화를 받아 주셨다.

“아이고, 선생님, 글쎄… 좀 전에 민하가 제 꿈에 나타나서 저를 막 혼내지 뭐예요. 저한테 선생님한테 전화 드렸냐고 묻더라고요. 아직 전화 못 드렸다고 했더니, 민하가 ‘엄마, 그러면 안 되지. 엄마가 나한테 항상 도움을 받은 사람에게는 꼭 찾아뵙고 감사하다고 말해야 한다고 해 놓고 엄마는 왜 아직까지 전화 안 드렸어? 내가 아무리 기다려도 엄마가 전화를 안 하는 것 같더라고.’ 하더라고요. ‘빨리 전화해~ 엄마~.’”

민하가 아프기 전에 즐겨 입던 옷과 헤어스타일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엄마 꿈에 나타나 성난 듯이 말하는 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가지 않아, 민하엄마는 꿈에서 깨어 한참을 울면서 민하를 찾았다고 했다. 역시나 민하는 곁에 없었지만, 민하가 간호사 선생님께 전화하라는 말이 너무도 생생해서 전화하려고 하니, 시간도 너무 늦고, 너무 오랜만이라 선뜻 통화하기가 망설여졌다고 하셨다. 그러나 민하가 엄마 품을 떠난 뒤로 처음 꿈에 나타났고, 목소리 톤에 약간의 원망이 담겨 있어 지금 전화를 안 하면 안 될 것 같아, 카톡을 보내신 거였다.

그렇게 민하엄마와 나는 민하의 연결로 어렵게 연락이 되어, 병원 건물이 보이는 조용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선생님, 병원은 여전히 바쁘지요? 왜 그렇게 아픈 아이들이 많은지, 신환은 끝도 없이 입원하는 것 같아요. 더 이상 민하처럼 아픈 아이들이 없어야 할 텐데요….”

서로 마주 잡은 손을 놓지 못하고, 그간의 안부를 전하면서, 민하엄마의 눈물은 마르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위로라고는 옆에 앉아 민하의 추억을 함께하는 정도였다.

“민하 외할머니가 먼저 간 애는 잊어야 한다고 성화여서, 이사도 했고, 쓰던 물건, 아끼던 장난감들도 다 정리했지만, 저는 아직 믿기지가 않아요, 우리 민하가 제 곁에 없다는 사실이요…. 지금이라도 집에 가 있으면, 민하가 문을 열고 들어올 것만 같아요. 그래서 엘리베이터가 열리는데 어릴 때부터 같이 학교 다녔던 민하 친구들이 내리면 깜짝깜짝 놀라요. 민하가 친구들한테 인사하는 목소리도 들리고요. 그래서 조용한 곳으로 이사했는데 도움은 안 되는 것 같아요.”

민하를 잃은 슬픔을 덮어두려고 하여 곪듯 고통을 느끼셨으나, 이제는 말로나마 표현을 하시며, 슬픔의 상처를 열어 주셔서, 슬픔과 고통이 나누어지며 위로받는 시간이 되었다. 민하엄마는 민하가 치료받는 동안 간병하면서 부족했던 점, 후회되는 점들만 계속 말씀하셔서, 민하가 사랑스럽게 했던 말과 행동, 기억들을 함께 떠올리며, 민하를 추억하고 추모하는 시간을 가졌다.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민하엄마는 오늘 나와 함께한 대화를 민하 아빠가 퇴근해서 집에 오면 말해 주고, 다음 날 민하(납골당)에게 가서도 말해 주겠다고 하며, 희미한 미소를 지으면서, 다음에는 민하와 같이 (납골당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하고 헤어졌다.

민하처럼 항암 치료나 집중 치료를 받고 있는 소아·청소년 환자와 가족들은 치료에 전념하는 중에는 다른 것은 치료 후로 미뤄 두고, 환자와 가족이 지금 받고 있는 치료가 최선인지, 치료 결정이 환자-가족-의료진 간의 의사소통이 잘된 결정인지, 환자의 현재 상태나 예측되는 상황을 알고 대처할 수 있는지 판단하기가 어렵다.





그런데, 2018년 7월부터 보건복지부에서 생명을 위협하는 질환을 가진 만 24세 이하의 소아·청소년 환자와 가족에게 완화 의료를 시범 사업으로 시행하는 기쁜 소식이 있다. 완화 의료를 호스피스와 혼동하시는 부분이 있는데, 완화 의료 서비스는 기존에 받고 있는 치료는 그대로 받으며(주치의 선생님 변경 안 됨), 치료 과정 중 진단명, 병의 진행 단계와 관계없이 언제든지 가능하다. 또한 서비스를 중단하고 싶을 때는 언제든지 중단할 수 있다. 주치의 선생님이 완화 의료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환자와 가족들의 의사를 확인하고, 완화 의료 의사에게 환자를 ‘의뢰’해 주거나, 환자나 가족들이 ‘소아·청소년 완화 의료 외래’에 직접 예약할 수 있다. 소아·청소년 완화 의료 서비스에 소개되면, 현재 환자 진료를 보고 있는 담당 의료진과 협력하여, 자문을 통해 완화의료팀이 서비스를 제공하게 된다. 완화의료팀은 소아·청소년 완화 의료 의사,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전담 간호사, 전담 사회복지사, 원목자, 치료사, 자원봉사자로 구성되어 있다. 완 화의료팀은 돌봄 회의를 통해 환자와 가족들에게 적합한 서비스를 계획하고 개입한다. 심각한 질병으로 겪는 증상, 불편감, 통증, 스트레스 등을 완화시켜 주고, 환자와 가족의 의견을 듣고, 심리적·사회적·영적·경제적 지지를 제공하며, 담당 의료진과 함께 필요한 지지와 보살핌을 받도록 의사소통을 지원한다. 또한 퇴원 후 응급 상황에 대한 계획을 수립하고, 지역사회 의료 기관에 연계하며, 가정에서 이용 가능한 의료 서비스와 복지 체계를 연계해 준다. 완화 의료 서비스는 환자뿐만 아니라 형제자매, 부모 등 모두가 어려운 시간을 잘 이겨 낼 수 있도록 돌봄 서비스를 제공한다.

소아·청소년 완화 의료 시범 사업은 현재 전국에 7개의 기관만이 선정되어 운영하고 있다. 서울에는 서울성모병원, 서울대학교병원, 세브란스병원, 대전에는 충남대학교병원, 전남에는 전남대학교병원, 대구에는 영남대학교병원, 칠곡경북대학병원이다.

서울성모병원 소아청소년완화의료팀의 이름은 솔솔바람(부드럽고 가볍게 계속 부는 breeze로 완화의료팀의 soul을 담은 솔솔바람이 환자와 가족들의 봄바람이 되어 주고, 직접 땀을 닦아 줄 수는 없지만, 조금이나마 땀을 날려 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음)으로, 솔솔바람의 주인공, ‘솔솔’이가 당신을 응원합니다.

환자와 가족의 오늘이 “삶”이 되도록 완화의료팀이 함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