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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사랑의 실천

  • 영성, 사랑의 실천
웹진 상세 내용
[제160호] “나는 행복한 호스피스 간호사입니다”
  • 구분 | 202010
  • 카테고리 | 영성, 사랑의 실천
  • 작성일 | 2020-10-05
영성, 사랑의 실천  “나는 행복한 호스피스 간호사입니다”





호스피스병동에서 근무한 지 1년이 되어 간다. 26년 차 간호사로 응급실, 병동을 비롯한 여러 부서를 거쳐 ‘나의 마지막 근무지는 어디일까?’ 가끔은 생각하고 있던 차였다.

지난해 7월 말, 동료 UM이 종합검진을 권유했었고, 건강만큼은 자신 있었기에 싫다고 거절하기를 반복하다 결국 동료 UM의 적극적 설득에 생전 처음 대장 내시경, 위내시경을 받았다. 그런데 대장 내시경에서 모양과 색이 좋지 않은 용종이 여러 개 발견되어 조직 검사를 시행했고. 아무래도 암일 수도 있다는 소견과 함께 소화기내과 진료를 다시 받아야 한다는 충격적인 결과를 듣게 되었다.

소화기내과 예약 진료를 기다리는 동안 종합검진 조직 검사가 나왔고 대장암일 가능성이 있다고 하여 소화기내과로 입원 후 용종 제거술과 조직 검사를 하고 일주일 후 결과를 보기로 했다. 정말 그 일주일은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않은, 말할 수 없이 온통 정신없는 암흑의 순간이었다.

‘암이면 어쩌지?? 내가 암이라니…. 어떻게 해야지…? 무얼 해야지? 아이들은 어떻게 하지?’ 정말 수많은 생각들이 밀려오다가 걱정과 두려움에 잠을 잘 잘 수도, 먹을 수도 없었다. 무엇보다 이제 초등학교 5학년인 늦둥이 셋째를 보며 그저 눈물만 났다. 어쩌면 사랑하는 세 아이를 이제는 못 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슬픔에 일주일을 눈물로 보내고 소화기내과 진료를 보는 날 또 한 번 울게 되었다. 결과는 직장 유암종(carcinoid tumor)이라 큰 걱정은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예수님,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저 정말 열심히 잘 살겠습니다. 제가 살아 있는 동안 정말 최선을 다해 일하겠습니다.’ 이런 말들을 속으로 수없이 하게 되었다.

이런 일이 있을 즈음 호스피스 병동 근무를 권유받았고 두렵고 걱정은 되었지만 호스피스 전문 간호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었기에 시작해 보기로 하고 일한 지 벌써 1년이 되었다.

대장 내시경을 시행하고 조직 검사를 기다리며 했던 수많은 생각, 느낌, 걱정…. 그 모든 것들이 그분께서 나를 호스피스병동으로 이끌어 주시려고 미리 예행연습을 시키셨나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아니 호스피스병동 근무는 그분의 배려 있는 계획이었다고 확신한다.

내가 느꼈고 경험했기에, 말기 암으로 진단 후 힘들게 호스피스에 입실하며 눈물로 매일을 지새우는 환자와 그 가족들의 마음을 공감하며, 정성과 사랑으로 대하고 임종 천사로서의 역할을 다하려고 지금도 노력하며 근무하고 있기 때문이다.

호스피스는 생의 마지막 순간을 가족과 함께 보내면서 화해하고 사랑할 수 있는 마지막 희망과 추억의 보물 창고인 듯하다. 호스피스에서 생의 마지막 순간에 화해를 하고, 사랑과 희망을 가지며 추억을 쌓고, 시간이 흘러 먼저 가신 그분들이 너무나 그리울 때, 조금씩 보물 창고의 기억들을 꺼내 보면서 남아 있는 가족들은 또 하루를 사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내 추억의 보물 창고에 계신 분들을 잠시 떠올려 본다. 호스피스에서 처음으로 내가 주님의 나라로 보내 드린 분이 제일 먼저 생각난다. 작년 9월 호스피스에 근무하기 시작했을 때, 50대 뇌종양 남자 환자가 입실해 있었다. 24시간 극진하게 간호하는 분은 부인이었고 직장에 다니는 딸과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딸이 가끔 오곤 했다. 그 부인은 매일 남편의 얼굴을 닦으면서 “이렇게라도 좋으니 살아 있어 줘요.”라고 말하곤 했다. 그래도 컨디션이 좋은 환자분이어서 좀 오래 계실 줄 알았는데, 조금씩 가래가 끓기 시작하고 임종기로 갈 듯하는 상황이 되었다. 간호하는 부인은 애써 담담해하려 했지만 돌아서서 눈물을 훔치면서 “조금만… 조금만… 더.” 하면서 남편에게, 아니, 생명을 주관하시는 그분께 애원하고 있는 듯했다. 아주 조용한 토요일, 데이 근무를 하고 있는데 환자분의 숨소리가 달라지고 가래도 증가하여 임종 격리를 시작하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환자분은 아주 편안한 모습으로 임종하셨다. 배우자와 함께 환자분의 마지막을 정리해 드리는데, “미안해요. 너무 오래 붙들고 있어서…. 이렇게 힘든데… 가지 못하게 해서…. 이제 편히 가요…. 사랑해요.”라고 남편의 얼굴을 쓰다듬으면서 한없이 울고 있던 그 부인이 요즘도 가끔 생각이 난다.

살면서 가족사진 한 장 없이 서먹서먹하게 살아온 딸과 아버지도 떠오른다. 이제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얘기에 아버지는 용기를 내어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가족사진을 찍고 싶다고 하셨다. 출장 사진사를 불렀고 힘들지만 기운 내서 차려입은 아버지와 딸은 호스피스 병동 내 복도에서 평생에 남을 한 장의 마지막 가족사진을 찍었다. 정말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30여 년 전에 헤어진 아버지가 백혈병에 걸리고 장성한 딸 둘을 찾던 기억도 있다. 그 딸들의 기억에 아버지는 항상 엄했고 무서웠던 기억밖에는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아버지는 백혈병으로 여명이 얼마 남지 않아 호스피스병동에 입원을 했고, 아버지의 옆에는 어머니가 아닌 다른 분이 간호를 하고 있는 상황에, 딸들은 너무나 화가 나고 이런 아버지를 이해할 수도 용서할 수도 없고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이런 안타까운 상황을 보며 일하는 팀원들 모두 어떻게 도와드려야 할지 참 고민되는 상황이었다. 환자분의 병세가 서서히 진행되기에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며, 아버지는 미안함에, 딸들은 서운함과 서먹함에 마음의 거리가 좁혀지지 않았지만 팀원들의 관심과 노력으로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하고 조금씩 화해를 하면서 환자는 임종하였다. 얼마 후 두 딸은 손을 꼭 잡고 우리 병동을 찾아와서 아버지가 계시는 동안 행복하게 계시다가 가셨다고, ‘별그리다’ 추모 공원에 모셨고 이제 마음이 편안하다고 하였다. 그날 음악 치료 선생님이 딸들과 인사를 나누면서 아버지와 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두 딸은 그 이야기를 듣고 하염없이 또 눈물을 흘렸다. 아버지는 30여 년을 자식들을 지켜 주지 못하고 아버지로서 해 준 게 없어서 늘 미안하다고 하면서 “죽어서 꼭 별이 되어서 우리 두 딸을 끝까지 지켜 주고 싶어요.”라고 음악 치료 선생님께 속마음을 얘기하셨다고 한다. 아버지는 별이 되어 딸들을 지켜 주고 싶어 했고 그런 아버지의 마음을 아는 듯 딸들은 ‘별그리다’ 추모 공원에 아버지를 모셨던 거였다. 마음이 훈훈해지는 순간이었다.

사랑하는 가족들을 먼저 보내고 힘들어하는 사별 가족들을 보면서 가끔은 “너무나 힘들고 슬프면 병동으로 놀러 오세요. 가신 분들을 추억할 수 있는 곳이니까 오셔서 둘러보고 가셔요.”라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한참 전에 임종하신 분들의 가족들이 가끔 오시면 우린 그것에 또 감동하고 힘을 얻고 있다.

많은 사연들과 많은 임종을 보면서 어쩌면 당연한 죽음에 감정이 메말라서 익숙한 일들이 될 수도 있는 ‘죽음’. 호스피스에서 모든 순간은 마지막이다.

마지막 식사, 마지막 미사, 마지막 생신, 마지막 성탄, 그리고 마지막 인사. 이 모든 마지막이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지 매일매일 조금씩 느끼고 있다. 이 세상에서 마지막 순간들이 헛되지 않게 정말 잘 보내 드리려고 오늘도 우리 팀 모두는 최선을 다해 임종 천사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그 마지막 순간들을 환자와 그리고 그 가족과 함께할 수 있어서 난 오늘도 너무나 행복한 호스피스 간호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