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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1호] 오늘, 북한산 큰 숲 아래 새벽을 열며
  • 구분 | 202011
  • 카테고리 | 여는글
  • 작성일 | 2020-10-29
여는글 오늘, 북한산 큰 숲 아래 새벽을 열며 권순용 베드로 가톨릭대학교 은평성모병원장



의학에 입문 후 짧지 않은 여정, 때마다 새벽잠을 깨워 평생의 일터로 향하게 하는 모멘텀들이 있었다. 학생 시절 배움에 대한 설렘과 기쁨, 수련의 시절에는 환자를 치료하고 배우는 새내기 의사로서의 보람과 열정, 초년 교수 시절에는 거침없던 도전 정신 그리고 중견 교수로서는 자그마한 의료인의 자취와 유산들이라도 남겨 보겠다는 의욕들이, 아마 도 그 시절 그때마다 부침(浮沈)의 세월, ‘Peak and Valley’를 지날 때마다 새로운 새벽을 열어 주었던 것 같다.

요즈음 교직원들의 새벽을 힘차게 열어 주는 견인차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는 항시 뇌리를 떠나지 않는 큰 숙제이다. 그간 병원 경영에 골몰해 온 짧은 경험에 비추어 보아, 하나는 교직원 모두가 의료인으로서 평생의 일터인 기관의 발전 과 공동체의 성취를 추구해야 한다는 진실한 마음이고, 다른 한 가지는 고통에 힘들어하는 나약한 모습으로 치유의 은총을 받고자 힘든 발걸음을 옮기는 환우 한 분 한 분의 모습들이 날마다 우리의 새로운 새벽을 열어 준다고 생각한다. 돌이켜 보면, 새 병원의 개원 과정 및 안정화를 위한 노력들도 이러한 면들에 주안점을 두고, 교직원들 모두가 스스로 일사불란하게 호흡을 맞추고 소통하며, 세심하게 준비된 계획하에 새 병원 새 역사를 향해 꾸준히 걸어온 나날이었다.

2020년 2월 21일, 이제 잔뿌리를 내리며 자리를 잡아 가는 우리에게 맞닥뜨린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병원 전면 폐쇄’ 행정 명령은 생명을 다루며 시시각각 수많은 예기치 않은 상황이 발생되는 곳이 병원이라지만, 창졸간에 맞닥뜨린 팬데믹으로 인해 총체적 난국을 초래하는 초유의 상황이었다. 새 병원을 위하여 벽돌을 쌓는 초심으로 함께 격려하며 헌신해 온 교직원 모두에게 용기와 투지로 헤쳐 나가자고 독려하기엔 너무나도 부치는 현실이었다. 미답의 전쟁 같은 실제 상황에 봉착하게 된 것이었다.

북한산 큰 숲 아래, 새로운 지역 거점 병원으로서 생명의 ‘Golden time’을 책임지는 보루로 항시 가장 일찍 은평의 새 벽을 열었던 기관이, 마치 큰 배가 전혀 예기치 않은 상황으로 대양 한가운데에서 갑자기 올 스톱된 것과 같은 충격적 상황에 빠진 것이었다. 위기의 상황을 직시한 교직원 모두의 표정에서 그동안 살아온 의료인의 삶에 있어서, 지금이 바로 가장 중요한 순간임을 절감하는 비장한 각오를 엿볼 수 있었다.

‘함께 소중한 우리’ 모두가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여야 할 시점이 도래했음을 진작하였다. 안타까운 현실 앞에 “진실은 늦게 도착하는 열차와 같다.”라는 격언을 되뇌는 가운데, 교직원 모두에게 “넘어야 할 산이고, 건너야 할 강이 눈앞에 있다.”라고 실로 모두가 함께하는 진실의 순간에 위기관리 경영을 간절히 부탁하였다. 해결책이나 타개책을 어디에서 구할 수 없는, 아무도 겪지 않았던 팬데믹 태풍의 핵 가운데에서 ‘Back to the Basic’ 그리고 ‘집단 지성의 힘’을 발휘해야 한다고, 원칙에 준하는 당부만을 하는 자신의 능력과 경륜의 미흡함에 안타까운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걱정과 우려를 뒤로하고, 은총과 평화가 넘치는 놀라운 기적과 역동적 현상이 발휘되기 시작하였다. 모든 신부님 그리고 수녀님, 그리고 교직원들이 손발을 걷어붙이고 병원 구석구석 소독약과 땀으로 범벅이 되어 밤늦게까지 소독 작업에 몸소 뛰어드는 모습은 ‘함께 소중한 우리’의 실현이었고 기관 역사의 한 페이지였다. 병원 곳곳에서 위기관리 시스템의 새로운 구축을 위하여 숙고하고 토의하는 일사불란한 조직의 움직임 속에서, 교직원 개인으로부터 각 과의 통합적인 의견 수렴과 결정에 이르기까지 효과적이고 솔선수범하는 책임감과 단결된 힘이 눈부시게 빛을 발하기 시작하였고, 환자 관리, 방역 및 소독 등 실제적 대응 측면에서 아무도 겪지 않은 위기 상황을 헤쳐 나가며, 대처하는 새로운 견고한 시스템과 매뉴얼들이 개발, 작성되기 시작하였다.

폐쇄로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도, 전문가의 전화위복 지혜를 도모하는 가운데 겉으로 보기에는 평온해 보여도 그들의 다리를 쉴 새 없이 움직이는 호수의 오리들처럼, 폐쇄된 병원의 고요함을 뚫고 밤낮으로 비상 대책에 여념이 없는 전 교직원들의 모습은 서로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각 부서의 관리자들은 단순히 인력 관리 차원이 아닌 업무 지원의 관점에서 노력을 기울이고, 상하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보고 체계가 아닌 업무 추진 상황을 공유하는 능동적이고 수평적인 관계 속에서 개개인의 책임감, 성실함과 상부상조의 협동심은 숙연한 감동이었다.

"우리는 그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함께 소중한 우리’를 묵묵히 실천하는 뚝심과 저력이 생겼다. 북한산 큰 숲 아래 성모 동산에 치유의 은총과 평화가 단 한 순간도 멈추지 않도록, 옷깃을 여미고 경건한 마음으로 오늘도 새벽을 여는 교직원들의 힘찬 발걸음에 경의를 표한다."

하느님의 은총과 평화가 있는 성모의 이름 아래, 위기와 난관 속에서 발휘된 집단 지성은, 부서별 매뉴얼과 가이드의 값진 소산을 낳았고, 이는 훗날 팬데믹 코로나19를 극복하는 데 국내외 여러 기관에 실제적으로 큰 도움을 주어 사회적 의학적 기여를 하였다.

성모님의 마음으로 모든 교직원들이 보여 준 봉사와 헌신의 정신과 노력 덕분에 또다시 분주한 밝은 새벽을 맞이할 수 있게 되었다. 위기를 극복하며 얻은 지난 상처는 빛나는 교훈이 되었으며, 새로운 미래를 위해 도약할 수 있는 단단한 밑거름이 반드시 될 것이다.

이제 우리는 그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함께 소중한 우리’를 묵묵히 실천하는 뚝심과 저력이 생겼다. 북한산 큰 숲 아래 성모 동산에 치유의 은총과 평화가 단 한 순간도 멈추지 않도록, 옷깃을 여미고 경건한 마음으로 오늘도 새벽을 여는 교직원들의 힘찬 발걸음에 경의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