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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사랑의 실천

  • 영성, 사랑의 실천
웹진 상세 내용
[제161호] 아픔을 덜고 마음을 나누는 호스피스
  • 구분 | 202011
  • 카테고리 | 영성, 사랑의 실천
  • 작성일 | 2020-11-04
영성, 사랑의 실천 아픔을 덜고 마음을 나누는 호스피스 이현미 의정부성모병원 호스피스완화의료팀 책임



병동에 깔깔거리는 웃음소리와 박수 소리가 울려 퍼진다. 평소 점잖으시던 환자분이 ‘미스터 트롯’을 시청하시고 흥이 나시는지 며느리와 스텝을 밟고 계신 것이다. 아름다운 모습에 감동의 눈물이 솟아오르는 것도 잠시, 곧바로 핸드폰을 꺼내 이 순간을 동영상으로 남긴다. 미소를 담아낼 수 있도록 이리저리 움직이고 목소리를 생생하게 담아낼 수 있도록 한껏 숨을 참아 본다. 한 바탕 춤바람이 지나가면 생활 전선에서 싸우고 있을 가족에게 전송한다. 환자를 기억할 소중한 보물이 한 가지 더 생겼다.

나는 사랑을 전달하는 호스피스 사회복지사다.

송 바오로 할아버지는 3개월 전 췌장암 말기 진단을 받았다. 배관공 일을 하며 자녀를 키우느라 삶은 고되었고 4년 전 아내를 먼저 떠나보내며 마음이 아팠다. 자녀들은 먹고 살기 바빠 아버지를 잊었고 외로운 할아버지는 침대에 누워 흘러간 팝송만 들었다. 내가 만난 바오로 할아버지는 눈 속에 외로움과 고독이 가득했지만, 그것을 감추기 위해 오히려 역정을 내는 분이었다. 바오로 할아버지의 마음을 열기 위해 호스피스팀은 최선을 다했다. 교수님은 할아버지의 통증을 줄여 드렸고 간호사와 사회복지사는 하루에도 여러 번 마음의 문을 두드렸다. 신부님과 수녀님은 하느님의 사랑을 전달했고 자원봉사자는 아로마 마사지로 온기를 나누었다. 많은 사람의 관심과 사랑을 받은 바오로 할아버지의 긴장은 점차 풀리기 시작했다.

이제 바오로 할아버지의 마지막 바람은 자녀들과 함께하는 것. 임종실로 옮긴 3일간 세 명의 자녀는 모든 일을 중단하고 바오로 할아버지 곁에 머물렀다. 행복했던 기억, 섭섭했던 마음과 오해 등 자녀들의 도란도란 이야기를 듣던 바오로 할아버지는 햇살이 가득한 아침, 편안한 얼굴로 하느님의 품에 안겼다. 자녀들은 눈물을 흘리면서도 잊었던 ‘우애’를 되찾았다며 미소 지었다. 바오로 할아버지가 떠난 후 1년이 지난 지금, 자녀들은 상실의 슬픔을 함께 이겨 내고 씩씩하게 살아가고 있다.



호스피스 병동은 가족이 화해와 용서를 하는 곳이며 사랑을 되찾는 곳이다. 살아오면서 주고받았던 상처를 이해하고 감싸 안으며 토닥일 수 있도록 말이다. 어렵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사랑’이 있으면 쉬워진다. 호스피스팀은 환자와 가족에게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끊임없이 마음의 문을 똑똑 두드린다. ‘환자’가 아닌 ‘한 사람’으로 바라보고, ‘환자 가족’이 아닌 ‘우리 가족’으로 여기며 소통하는 것이다. 이것이 반복되면 환자와 가족의 긴장과 불안감은 어느새 사르르 풀어지고, 서로를 바라볼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호스피스팀은 그저 ‘사랑’을 마중물로 사용할 뿐이다.

환상적인 팀워크로 발맞춰 나가던 호스피스팀에 별안간 시련이 닥쳤다. 2020년 4월, 원내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한 것이다. 호스피스 환자와 가족은 초조한 마음으로 하루 종일 텔레비전 뉴스만 시청했다. 호스피스 팀원을 제외한 다른 사람의 병동 출입이 금지되었고 당연히 자원봉사 활동도 중단되었다. 긴장과 적막이 둘러싼 호스피스 병동은 그야말로 ‘고립된 섬’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계속 있을 수는 없었다. 코로나가 아무리 병원을 뒤흔들어도 호스피스 환자의 마지막 기억이 코로나로 남게 할 수는 없었다. 먼저 팀장 수녀님이 팔을 걷어붙이셨다. 입맛을 잃은 환자와 가족을 위해 매일 떡볶이, 잔치 국수, 어묵탕 등 맛깔나고 정겨운 음식을 한 솥 가득 만들어 배를 든든히 채우셨다. 배가 두둑해진 환자와 가족의 얼굴에서 긴장감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간호사와 사회복지사는 목욕과 아로마 마사지로 다정하게 온기를 전달했다. 말끔해진 환자의 얼굴에서 미소가 꽃피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전 11시마다 기도실에서 떠나간 연령을 위한 위령기도를 드리고, 병실에서 자비의 기도를 함께 드렸다. 이제는 힘든 순간을 이겨 나갈 수 있다는 힘과 연대감이 생겼다.

돌이켜 보면 긴장의 연속이었다. 호스피스팀은 혹여 호스피스 병동에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하지 않을까, 임종을 준비하는 환자와 가족이 마음에 상처를 받지 않을까 걱정하며 수많은 날을 뜬눈으로 지새웠다. 그러다 보니 환자와 가족을 더 생각하고 더 걱정하였으며 더 애정을 주었다. 그렇다. 환자와 가족에게 가졌던 사랑이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이 커진 것이다. 사람이 사람에게 가질 수 있는 사랑의 크기는 한계가 없었다. 사랑은 무한했다. 호스피스팀이 시련을 극복하고 비로소 한 단계 성장하는 소중한 순간이었다.

오늘도 호스피스팀은 환자가 여생을 아름답게 정리하고, 남은 가족이 행복한 기억을 간직한 채 살아가도록 노력하며 무한한 사랑을 전달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아픔을 덜고 마음을 나누는 호스피스만의 치유적 사랑이다. 의정부성모병원 호스피스완화의료센터는 경기 북부 유일한 대학병원 호스피스 병동으로서 치유적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앞으로도 최선을 다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