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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사랑의 실천

  • 영성, 사랑의 실천
웹진 상세 내용
[제162호] 내 소리가 들리나요? 하형숙 데보라 수녀 성빈센트병원 영성구현팀
  • 구분 | 202012
  • 카테고리 | 영성, 사랑의 실천
  • 작성일 | 2020-12-02
영성, 사랑의 실천  내 소리가 들리나요?


영성, 사랑의 실천  내 소리가 들리나요?



수녀원은 각처에서 온 많은 사람이 함께 살다 보니 재미난 이야기가 많다. 언젠가 각자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한 수녀님이 어릴 적 나가서 놀고 싶은데, 엄마가 일해야 하니까 동생을 봐주라고 했다고 한다. 수녀님은 동생을 업고 나가서 친구들과 놀고 싶은데 동생을 업은 채로는 뛸 수가 없어, 동생을 길가 전봇대에 포대기로 둘러 묶어 놓고 뛰어놀았다. 그렇게 마음껏 놀고 집에 올 때 다시 포대기에 동생을 업고 돌아왔다고 한다. 이는 가해자 수녀님의 고백이다.

반면 피해자의 고백도 있었다. 엄마가 학교에서 돌아온 오빠에게 어린 동생(피해자 수녀님)을 맡기며 돌보라고 하셨단다. 그런데 오빠는 나가서 뛰어놀고 싶었던 것이었다. 오빠는 어린 동생을 길옆에 앉혀 놓고, 그 둘레에 금을 그려 놓고서 단단히 일렀다. “너 여기서 나오면 안 돼. 오빠가 올 때까지 꼼짝 말고 여기에 앉아 있어야 해. 금 밖으로 나오면 큰일 난다. 알았지?” 그렇게 오빠는 어린 동생에게 단단히 일러두고 친구들과 함께 놀았다. 엄마가 저녁을 차려 놓고 아이들을 부르는데 어린 동생이 없더라는 것. 오빠에게 물으니 쏜살같이 밖으로 달려 나가더니 (수녀님의 어머니의 증언) 어린 동생을 데려왔는데, 아이는 해 저무는 저녁, 어둠이 깃드는데 그어진 금 안에서 꼼짝도 안 하고 쪼그리고 앉아 있더라는 것이다.

2020년 한 해, 우리는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전봇대에 묶여 있었다.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경계선 안에서 오도카니 갇혀 지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는 기발한 생각이라고 박장대소했다. 얼마나 놀고 싶었으면 그렇게 했겠나 싶었다. 그래도 안전 조치는 했으니 그나마 다행 아닌가. 그런데 얘기를 듣고 있자니 왠지 가슴이 저릿해 온다. 전봇대에 묶여서 바둥거렸을 아이와 금 안에 갇혀서 어둠이 내리는 적막한 시간까지 앉아 있던 아이를 떠올리자 마음 한편이 서늘해진다.

“피해자….”

2020년 한 해, 우리는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전봇대에 묶여 있었다.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경계선 안에서 오도카니 갇혀 지냈다. 언니를 그리고 오빠를 기다리고 있었던 어린아이처럼. 그렇게 우리 모두는 코로나의 피해자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나 자신이 어디에 묶여서 살고 있는지, 또는 나 자신의 어떤 울타리에 갇혀서 지내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한 수녀님이 몸살로 앓아누워 있는데, 모두는 즉각 반응을 보인다.

“근육통? 코로나의 증상인데….”, “체온은?”, “설마 코로나는 아니지?”

어디 갔다 왔느냐, 오늘 확진자가 다녀갔다는데 거기에 있었느냐 등등 이동 경로까지 추적한다. 병원 진료 후, 너무 힘들어 몸살이 난 거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괜찮다’는 반응을 보인다. “얼마나 힘들어요? 죽이라도 끓일까요?”라고 해야 하는데, 코로나가 아니라고 말이다.

나는 어디에 집착하여서 묶여 있는가? 마스크를 쓰고 있으니 엉엉 울면서 언니를 부를 수도 없다. 나는 어디에 갇혀 있는 것인가? 거리 두기 때문에 오빠의 손을 잡을 수도 없다. 코로나 블루(우울), 코로나 레드(분노), 코로나 블랙(절망)….

그래 용서하자. ‘놀고 싶다’고 했던 언니와 오빠를. 그래도 나를 찾아와 주었으니까.

아, 그런데 이곳은 성빈센트병원이지? 52병동에는 코로나19로 투병 중인 외롭고 고독한 환자들이 있다. 인공호흡기에 묶여서, 그어진 선 안에 격리되어서, 코로나가 그들에게 말한다.

“내가 놀고 있을 동안에 여기 묶여 있어야 해! 내가 놀고 있을 동안에 금 밖으로 절대 나오지 말아야 돼!”

그가 홀로 있다. 그에게 가야 한다. 그의 손을 잡아 주고 싶다. 그의 언니가, 그의 오빠가 되어서 그를 데려와야 한다. 그가 그렇게 홀로 사투를 벌이고 있다. 그가 혼자다.

나는 격리 병동 울타리를 붙잡고 마스크 속으로 이렇게 소리친다.

“나 여기 있어요. 내 소리가 들리나요?”

“힘내세요. 제발, 조금만 더 힘내세요.”


영성, 사랑의 실천  내 소리가 들리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