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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사랑의 실천

  • 영성, 사랑의 실천
웹진 상세 내용
[제171호]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 구분 | 202109
  • 카테고리 | 영성, 사랑의 실천
  • 작성일 | 2021-08-31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김서희 의정부성모병원 호스피스 완화의료센터 간호사

김서희 의정부성모병원 호스피스 완화의료센터 간호사



호스피스란 죽음을 앞둔 말기 환자와 가족들이 삶과 죽음을 하나로 받아들이고 마지막 순간을 함께 나누며 용서와 화합, 사랑으로 또 다른 삶을 향해 다시 피어날 수 있게 하는 돌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품위 있는 죽음을 위한 돌봄”,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하는 마지막 순간”, “생의 마지막 아름다운 이별” 등을 추구하는 이곳은 아픔을 덜고 마음을 채우는 의정부성모병원 호스피스 완화 의료센터입니다.

호스피스 완화의료센터는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등 호스피스 완화 의료 전문 인력과 원목자, 영양사, 약사, 자원봉사자, 요법강사 등 다학제팀을 구성하여 통증 등 신체적 증상뿐만 아니라 심리적, 사회적, 영적 문제를 돌봄으로써 환자와 가족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집밥 데이에 먹는 따뜻한 밥, 자원봉사자들의 목욕과 이발, 림프부종으로 퉁퉁 부은 팔과 다리 마사지, 생일 파티, 결혼기념일 파티, 김장하기, 추석날 송편 빚기, 작은 음악회, 미술 요법, 원예 요법, 웃음 요법, 아로마 심리 테스트, 주말 농장 감자 수확 나눔, 대세 받기, 사별 가족 추모제, 사별 가족 전화 방문, 편지(문자) 보내기, 추억 앨범 만들기 등 다양한 행사들을 하면서 울고 웃던 일상의 모습이 이제는 코로나19로 인해 많이 제한되고 있어서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호스피스 완화 의료에 대한 정보는 다양한 홍보와 미디어 매체를 통하여 널리 알려지고 있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환자와 가족들은 호스피스 완화의료센터 입원 권유를 받으면 ‘나는 아직 죽을 때가 아니야.’ 또는 ‘그곳에 가면 나는 이제 죽는구나.’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고 하십니다. 하지만 입원하고 하룻밤을 자고 나면 “진작에 올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끝날 것 같지 않은 통증과 힘든 증상에 대한 적극적인 통증 조절과 증상 완화는 환자로 하여금 자신을 위해 의료진이 24시간 상주하며 힘들 때 언제든지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확신과 자신을 위하는 진심이 담긴 마음을 느끼며 심리적으로 안정을 되찾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저희 호스피스 완화의료센터에는 1인실 1개, 2인실 1개, 4인실 2개의 11개 병실이 있으며 가족실, 요법실, 기도실 등의 소박하고 아담한 방들과 생의 마지막을 마무리하는 환자와 가족과 의료진을 위한 아픔을 덜고 마음을 채워 주는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 임마누엘실(임종실) 1개의 방이 있습니다.

입원을 하고 소중한 시간을 정리하며 생활하다 상태가 급격히 나빠지기 시작하면 마지막 여정을 준비하기 위해 임마누엘실(임종실)로 환자를 옮겨 정성과 사랑으로 임종 돌봄을 시작하고 하느님 나라로 잘 보내드리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 저희 의료진들의 소명인 듯합니다.

일 년에 100여 명의 임종 돌봄을 하지만 아직도 임마누엘실에서의 잊지 못하는 그날의 소중한 기억을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작년 11월 초 진행성 위암 말기 진단을 받고 기대 여명 2~3개월에 치료 한 번 받지 못하고 일반 병동에서 호스피스 병동으로 66세의 미혼인 여자 환자가 전실을 오셨습니다.

1남 3녀 중 둘째 자녀로 태어나 어린 시절 연탄집게에 왼쪽 눈이 찔려 안구 손상 이후 신체 콤플렉스로 의기소침하게 지내다 부모에 대한 원망으로 평생을 살아왔으며 가족들과의 왕래도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 언니를 걱정하는 여동생이 찾아가면 “내가 죽은 뒤에 내 집에 들어와라.” 하며 가족들에게 마음의 문을 닫고 살아오신 분입니다. 그러던 중 2020년 11월 본원에서 말기 암 진단을 받았고 여동생의 도움으로 호스피스 병동 생활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초기에는 여동생과 데면데면하게 지내기만 하다 어느 순간 서로 의지하면서 함께 웃고 이야기 나누며 평온한 얼굴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늘이 맑은 날 오후 출근을 하니 임마누엘실에 그분이 계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동생과 작은 방 안에서 외롭고 두려운 시간을 보내며 힘들게 호흡하고 있었습니다. 환자의 혈압을 체크하니 50이 겨우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순간 ‘자비의 기도’를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힘들게 호흡하는 언니를 지켜보던 여동생에게 “언니가 힘들어하시는데 지금 자비의 기도를 드려도 될까요?” 하고 여쭈어 보자 흔쾌히 허락하시며 감사하다는 표현을 하셨습니다.

“유○○ 님, 자비의 기도를 해 드릴게요. 무서워하지 마시고 마음 편히 가지세요.”

환자 귀에 대고 말을 하고 난 뒤 여동생과 함께 자비의 기도 5단을 시작했습니다.

3단쯤 드리고 있을 때 이전까지 힘들게 숨 쉬던 환자분의 안색이 편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마지막이구나!’라는 직감이 스치자 목구멍에 뭔가 차올라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몇 번이나 가슴을 쓸어내리며 쉬다 읽다 반복하며 나머지 2단의 기도를 마치는 순간 환자의 호흡이 멈추었습니다. 여동생에게 마지막 인사를 드리도록 하고 심전도 리드를 붙였습니다. 몇 회의 심박동이 그려지다 삐- 소리와 함께 ‘0’이라는 숫자가 나타났습니다. 임종하신 환자를 바라보자 평온한 얼굴이 마치 웃는 듯 보였습니다.

고인을 영안실로 모시기 직전 여동생은 저를 안아 주면서 “간호사님 기도 덕분에 언니가 편안히 가실 수 있었어요. 감사해요.”라고 말씀하시며 등을 토닥여 주셨습니다.

그 순간 저는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면서 기도를 통하여 환자의 어린 시절 슬픔과 원망과 상처를 치유하시고 아름답게 생을 마무리할 수 있게 해 주셨으며 편안한 마음으로 임종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해 주신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렇듯 임종 돌봄을 받는다는 것은 환자와 가족들이 용서와 화합과 사랑으로 생의 마지막을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축복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임종 돌봄을 하면서 느낄 수 있는 이 소중한 기억들은 제 삶을 들여다보게 하고 제 주위를 돌아보게 하는 에너지가 됩니다.

2021년 1월 유난히 힘들고 우울한 시기를 보내던 즈음에 사랑하는 엄마가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이제 엄마가 없구나!’
‘이제 정말로 고아가 되었구나!’
하며 힘들어하던 어느 날 문득 다른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상실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내가 느끼는 이 감정들을 이곳에 남겨진 가족들도 느끼겠구나.’

사랑하는 엄마를 하늘나라로 보내고서야 이곳에 계신 환자와 사별 가족들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으며 환자와 보호자와의 대화가 조금 더 편해지며 그분들의 심정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의 엄마 모습이 힘들어 보여도 동영상으로 많이 찍어 두세요. 시간이 지나면 정말로 소중한 보물이 될 거예요…. 이다음에 엄마 보고 싶을 때 언제든 꺼내 볼 수 있잖아요. 저는 그렇게 못해서 아쉬워요.”

“엄마 보내시고 힘드시죠? 잊으려고 하지 마시고 함께하고 있다고 생각 하세요. 울고 싶을 때 참지 말고 대성통곡이라도 해 보세요. 한결 마음이 편해집니다. 참지 말고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해 보세요.”

“이렇게 최선을 다해 간병하신 것을 아버님도 아시고 말로 표현은 못하셨지만 마지막을 함께해 주신 어머니에게 ‘고마워.’, ‘사랑해.’, ‘고생했어.’ 하셨을 거예요. 그동안 정말로 잘하셨어요.”

이렇게 소소하지만 진심을 담아 보호자들을 위로하고 있습니다.지금도 임마누엘실에 들어갈 때면 그날을 생각하며 마지막 여정을 마무리하는 이 방에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하고 계시다.’라고 굳게 믿으며 기도를 드리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