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영성, 사랑의 실천

  • 영성, 사랑의 실천
웹진 상세 내용
[제172호] 숨겨진 보물, 새로운 삶으로의 초대
  • 구분 | 202110
  • 카테고리 | 영성, 사랑의 실천
  • 작성일 | 2021-10-05
숨겨진 보물, 새로운 삶으로의 초대 정영미 아가타 수녀 인천성모병원 원목팀



오늘을 살며, 환자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참 소중합니다.찰나의 시간도 내가 그 안에 함께 젖어 들지 않으면 허투루 지나감을 절실히 느끼는 시간이기에 더욱 그렇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병원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 제 안에 없었던 마음이기도 합니다.

병원! 생명의 시작과 마침이 공존하는 곳, 아픈 이들이 찾아오고 회복되는 곳! 병원은 우리의 인생 여정을 함께하는 곳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가진 병원의 이미지는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와 함께 늘 긴장감이 감돌고 육신의 고통으로 힘들어하는 이들이 모여 있는 곳, 또 형태만으로도 위엄을 느끼게 하는 크고 복잡해 보이는 기계가 즐비하고, 의료진들은 알아듣지 못하는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바쁘게 움직이는 그렇게 뭔지 모를 무게감이 느껴지는 곳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원목 소임으로 병원에 들어선 저는 설렘보다는 긴장감에 사로잡혀 경직되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오히려 생동감 있게 살라고 불러 주셨다는 울림이 있었고 주님께서 저를 긴장감 속에서 살라고 병원으로 초대하지는 않으셨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언제 어디서든 늘 함께하셨고 그곳에서만 찾을 수 있는 보물을 감춰 놓으시고 그것을 찾아가며 살아가길 원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늘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다. 그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그것을 다시 숨겨 두고서는 기뻐하며 돌아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마태 13, 44).

우리 원목 수녀들은 하루하루 보물을 찾아 나섭니다.아침이면 성당에 앉아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오늘 하루 만나게 될 환자들을 기억하며 저를 주님의 도구로 써 주시고 숨겨진 보물을 찾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러고는 제일 먼저 수술을 앞두고 초조해하는 환자들을 만납니다. 홀로 수술 대기실에 들어온 환자들은 그 짧은 시간에 많은 생각에 잠기고 여러 감정이 오간다고 말씀하십니다. 지나온 삶이 파노라마처럼 보이신다는 분도 계시고, 다시는 눈을 뜨지 못할까 두려워하시는 분도 계시고, 간혹 가벼운 마음으로 왔다고 하시는 분도 계십니다. 어느 날 너무 어려서 엄마 품에 안겨 대기실로 들어왔던 어린아이가 있었습니다. 성당에서 운영하는 어린이집을 다닌다는 그 아이는 기도를 하는 동안 손을 모으고 호기심 가득한 눈빛과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저를 바라봤습니다. 애달픈 엄마와는 달리 엄마 품에 안겨 있는 그 아이에게는 두려움이 드리워 있지 않았습니다. ‘아! 아이에게 엄마만 있으면 되듯이 어른들도 그럴 수 있다면!’ 이러한 깨침을 준 바로 그 아이가 제가 발견한 보물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환자들이 그 아이처럼 믿는 구석이 하나씩 있기를 바라며, 반드시 특정 종교가 아니더라도 마음의 평화를 지킬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또한 환자들의 간절함을 함께 담아 수술을 집도해 주실 의료진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들의 손에 이분들의 삶이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간혹 수술을 준비하는 바쁜 시간이지만 집도의 선생님이나 간호사 선생님이 기도에 함께해 주실 때는 정말 마음이 든든합니다. 마치 성경에서 예수님께 치유의 기적을 바라는 이들이 모여들 때 꼼짝 못하는 중풍 병자를 주님께 내려 보내려고 지붕을 뜯어내는 수고를 감행하는 이웃을 만난 것처럼 반갑습니다. 그리고 제가 감사함을 표현하면 오히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는 듯 멋쩍어하시는 의료진들의 마음은 숨겨진 보물입니다.

병동에서 만나는 환자분들은 제게 자신이 살아온 삶을 여과 없이 나누어 주십니다. 수도자이기 때문에 마음을 열고 가족에게도 하지 못하는 마음속 이야기들을 털어놓습니다. 그렇게 자신을 내어놓고 지나온 삶을 정돈해 나가시는 분들은 하나같이 아픈 것이 모두 나쁜 것 같지는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물론 고통이라는 대가를 치러야 하지만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찾으며 살아왔는지 인생 여정을 성찰하는 시간이 되기도 하고, 소유했던 모든 것이 건강을 잃고 나니 아무것도 아님을 깨달았다고 고백합니다. 또 바쁜 일상에 지쳐 잃어버렸던 자기 자신과 사랑하지만 표현하지 못해 멀어진 가족, 그리고 여러 가지 핑계로 외면했던 하느님…. 이렇게 자신과 타인과 하느님을 인격적인 만남을 통해 새롭게 만나고 관계를 회복하려는 환자들과 동행하는 시간은 그 자체로 감동이고 제 삶에도 양식이 되는 귀한 보물입니다.

지난 5년간 만나 온 분 중에 쾌유하시고 삶의 자리로 되돌아가신 분들이 대부분이지만 특별히 온 삶을 통해 얻어 온 가치와 진리를 거저 남겨 주시고 하늘 본향으로 돌아가신 분들은 잊지 못할 보물입니다. 그중 특별히 기억에 남는 자매님이 계십니다. 그분이 임종을 앞두고 보여 주셨던 모습은 여전히 제 마음에 살아 있는 보물입니다. 화려하지만 외로운 삶을 살아온 50대 초반의 미혼 여성 환자분이었는데 그분은 치료받는 시간도 삶의 여정이고 의미 있는 행복한 시간이라고 했습니다. 끊이지 않는 통증으로 자신의 몸을 감당하지 못해 간호 도우미 선생님들의 손을 빌려야 하는 순간에도 늘 미소를 잃지 않으셨고, 밤새 앓아 잠을 못 이룬 날에도 자신이 겪은 고통보다 함께 병실을 이용하는 환자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계셨기에 다른 분들도 오히려 마음을 더 써 주셨습니다. 때로는 혈관이 잡히지 않아서 애태우는 간호 선생님들을 오히려 격려하며 혈관이 좋지 않아 미안하다고 하셨는데, 간호 선생님들은 그분을 살아 있는 천사라고 했습니다. 죽기까지 자신이 겪는 고통보다 타인의 아픔에 더욱 공감하고 배려하는 모습을 보여 준 이분의 언행은 많은 이들에게 본보기가 되었고 그분의 선함은 병동에 있는 많은 이들을 선으로 이끌어 주는 것 같았습니다. 임종 시간이 다가왔을 때 그분은 함께 있던 이들에게 새로운 삶으로 옮겨간다면서 먼저 가서 꽃자리를 마련하고 있을 테니 천천히들 오시라고 말씀하셨던 것이 생생히 기억납니다. 하늘길로 오르셨을 때도 철저히 혼자여서 빈소도 마련되지 않았지만, 함께 치료받던 많은 이들이 기도와 사랑으로 응원했습니다. 저는 이 환자분과 동행하며 살아 계신 주님을 만났고, 몸이 불편한 환자분들이 서로를 보듬어 주는 모습은 세상 그 어떤 아름다움보다 더욱 빛나는 보물이었고, 그곳이 바로 하느님 나라였습니다.

코로나19가 우리의 일상을 흔드는 요즘, 일상 안에 스며든 불안감과 불편감으로 환자들은 불안한 마음이 크고 여러 가지로 제약이 많아진 병원 생활을 건강한 마음가짐으로 하기란 너무 어려워 보입니다. 보호자 상주가 일부 허용되긴 하지만, 가족들이 긴 시간 함께할 수 없어 간병인을 고용하는 환자들은 입원 기간 내내 가족을 만날 수도 없습니다. 의지할 곳 없이 홀로 서기를 해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린 환자들은 몸뿐 아니라 마음도 무너지는 경험을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시간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에도 숨겨진 보물이 있기에 희망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는 그 누구도 앗아 갈 수 없는 보물이 있습니다. 바로 ‘미소’입니다. 수도회 공동 창설자이신 ‘마뗄’께서 회원들에게 ‘미소 봉사’를 권고하셨습니다. 어떠한 순간에나 미소 지으며 유쾌하게 살아가는 것, 그것이 하느님 나라를 사는 비결이지만 주님이 주시는 마음의 평화가 없다면 불가능할 것입니다. 단순하지만, 쉽지 않은 그 길, 그 길로 초대하시는 주님은 우리를 홀로 두지 않으심을 믿습니다.

그렇게 저는 오늘도 저를 만나 주시는 환자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숨겨진 보물을 발견하며 날마다 새로운 삶으로 초대하시는 주님과 함께하렵니다.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을 다스리게 하십시오”(콜로 3,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