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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믿을 수 있나요?
  • 구분 | 202112
  • 카테고리 | 여는글
  • 작성일 | 2021-12-02
사람을 믿을 수 있나요? - 김영국 요셉 신부 학교법인 가톨릭학원 사무총장


김영국 요셉 신부 학교법인 가톨릭학원 사무총장


얼마 전 ‘오징어 게임’이란 묘한 제목의 드라마가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딱지치기, 구슬 놀이, 줄다리기, 달고나 뽑기 등 어린이들의 단순한 놀이로 진행되지만, 참가자들은 자기 목숨을 실제로 걸고 게임을 벌이는 기괴한 내용의 드라마입니다. 현실의 삶의 현장에서 철저하게 낙오한 이들로서 파멸의 벼랑 끝에서 오로지 일확천금의 꿈을 꾸며 게임에 참가합니다. 게임에서 탈락하는 사람은 죽고 최후의 승자가 모든 상금을 독차지하는 승자 독식(勝者獨食)하게 되는 내용의 드라마에 전 세계의 사람들이 이토록 열광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나라는 1960년대만 해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들 가운데 하나였지만, 어쩌면 국제사회의 무한 경쟁 ‘오징어 게임’에서 겨우 살아 남아 선진국 대열에 합류한 국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행복하게 살고 있나요? OECD 국가 가운데 자살률이 가장 높고, 출산율은 가장 낮은 나라가 되었을 뿐 아니라, 소득 불평등, 빈부의 양극화, 생존을 위한 무한 경쟁, 이주민의 인권침해, 기회 불공정 등에 따르는 수많은 문제점들을 안고 힘겹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징어 게임’에서 최후 승자가 되어 엄청난 현금을 보유하게 되었어도 결코 행복할 수 없었던 주인공 기훈과 닮아 있지는 않은지요?

그런데 이러한 현실이 결코 우리나라만의 것은 아닌가 봅니다. 현재도 진행 중인 코로나 팬데믹은 단순한 전염병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정치 경제적으로 전 세계를 불안정하게 만들고 있고, 최근 격화되고 있는 미국과 중국의 주도권 경쟁으로 그 불안감은 더욱 가중되고 있습니다. 백신 접종과 방역 등과 관련하여 국가 간의 빈부의 차이에서 오는 불공정과 불의, 부유한 국가들의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모습에 좌절하기도 합니다. 기후 온난화와 관련하여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한 국제적인 협력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도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어쩌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오로지 상금을 위해 발버둥 치며 거대한 ‘오징어 게임’에 참가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드라마의 마지막 회에 나오는 번외 게임이 흥미롭습니다. 이 게임의 설계자인 일남이 뇌종양으로 임종을 앞두고 병상에 누워 있으면서 주인공 기훈을 자신의 병실로 초대합니다. 초대 시간은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 11시 30분. 창밖에는 흰 눈이 내리고, 길가에는 추위에 떨며 쓰러져 죽어 가고 있는 노숙인이 보입니다. 12시가 되기까지 누군가 그를 도와주는 사람이 나타날지를 두고 게임을 한 번만 더 하자고 합니다. 일남은 기훈에게 “사람을 믿느냐?”고 묻습니다. 크리스마스이브에 내리는 흰 눈은 길가에 쓰러져 있는 노숙인에게는 죽음을 재촉하는 얼음 가루에 지나지 않습니다. 주인공 기훈은 비록 찌질한 인생을 살아왔지만, 사람에 대한 믿음은 잃지 않은 인물로 묘사됩니다.

"예수님의 성탄은 하느님은 사람을, 사람들의 선한 마음을 믿는다는 메시지가 아닐까요? 하느님은 인간을 믿었고, 그래서 마리아를 믿고, 요셉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믿고 갓난아이로 태어나실 수 있었습니다. 하느님을 믿는 사람은 사람을 믿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성탄은 하느님은 사람을, 사람들의 선한 마음을 믿는다는 메시지가 아닐까요? 하느님은 인간을 믿었고, 그래서 마리아를 믿고, 요셉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믿고 갓난아이로 태어나실 수 있었습니다. 하느님을 믿는 사람은 사람을 믿는 사람입니다. ‘나’는 나를 믿어야 합니다. ‘나’는 ‘너’를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를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내면에 착한 사마리아인(루카 10, 29~37)이 함께 살고 있다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웃을 위한 양보와 배려의 덕을 익히고, 때로는 자신을 희생하는 용기를 내어 우리 모두 함께 진정한 ‘깐부’가 됨으로써 춥고 암울한 세상을 살면서도 함께 밝고 따뜻한 내일을 희망할 수 있는 게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