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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75호] 희망의 씨앗 뿌리기
  • 구분 | 202201
  • 카테고리 | 여는글
  • 작성일 | 2022-01-03
신년사 희망의 씨앗 뿌리기 손희송 베네딕토 주교 학교법인 가톨릭학원 상임이사

손희송 베네딕토 주교 학교법인 가톨릭학원 상임이사

중세 이탈리아의 작가 단테가 쓴 『신곡(神曲)』은 지옥에서 천국으로 가는 순례 여정을 그린 유명한 작품입니다. 그 책에 보면 지옥의 입구에는 “이곳에 들어오는 자들이여! 모든 희망을 버릴지어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지옥은 실낱같은 희망조차 없는 곳입니다. 이런 의미의 지옥은 이미 현세에서도 시작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한 가정 안에서 부부끼리, 부모 자식이 서로 믿지 못하고 갈등과 다툼 속에서 지내는데, 그런 뒤틀린 관계가 개선될 희망이 전혀 없이 계속 얼굴을 맞대고 살아야 한다면, 그것이 바로 지옥의 상황, ‘생지옥’입니다.

코로나19 사태가 3년째로 접어듭니다. 모두를 힘들고 지치게 하는이 상황이 생지옥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의 모든 어려움과 고난은 동굴이 아니라 터널로서, 언젠가는 끝이 있고 나가는 출구가 있습니다. 그런 희망으로 힘든 날들을 버텨야 합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나만이 아니라 나와 함께 사는 사람들도 희망을 잃지 않도록 희망의 씨앗을 뿌려야 합니다. 아무리 작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희망이 될 만한 말과 행동을 한다면, 언젠가는 열매를 맺게 됩니다. 이와 관련해서 어느 신부님의 경험담을 소개합니다. 그분은 대학을 마치고 수도원에 들어가서 늦은 나이에 신부가 되었는데, 어느 날 이메일 한 통을 받았습니다. 혹시 모르는 사람이라서 스팸이 아닐까 싶어 망설이다가 ‘17년 전의 인연을 기억하며’라고 적힌 제목을 보고선 도저히 안 열어 볼 수가 없었답니다.

“17년 전? 얼른 계산해 보니 일반 대학에 적을 두고 있던 때였습니다. 메일을 열어 보니, 놀랍게도 저를 신부님도 아닌 ‘선생님’이라고 부르고 있는 17년 전의 한 제자가 보낸 메일이었습니다. ‘제 인생에 첫 씨앗을 뿌려 주셨던 분, 선생님을 꼭 한 번 만나 뵙고 싶었습니다.’로 시작된 메일은 무척 뜻밖의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반 아이들의 일기를 다 검사하고 난 다음,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나중에 ○○이는 훌륭한 시인이 될 거라는 한마디의 제 칭찬이 씨앗이 되어 자신은 시인의 꿈을 키워 왔고 몇 년 전 어엿하게 등단을 하게 되었다는 내용이었죠. 그제야 저는 대학 시절 서울의 어느 초등학교에 교생실습을 나갔던 때가 어렴풋이 기억이 났습니다. 세상에, 거의 20년 전의 기억조차 나지 않는 작은 칭찬 하나가 그것도 약 한 달간의 교생실습 중에 잠깐 만났던 인연의 끈이 이렇게도 한 매듭을 지을 수 있구나 하는 생각에 무척이나 놀랍고 반갑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두렵기까지 했습니다.”

교생실습을 나갔던 대학생의 칭찬 한마디가 초등학생의 마음속에 작은 씨앗으로 뿌려졌고, 그 씨앗은 17년이 지나서 열매를 맺었습니다. 지금 눈에 보이는 것이 너무 미소하다고 해서 실망할 이유는 없습니다. 작은 겨자씨가 큰 나무로 자라나고, 소량의 누룩이 많은 양의 밀가루 반죽을 부풀게 하는 것처럼 우리가 다른 이들을 진정으로 위하는 마음으로 한 말과 행동은 희망을 심어 주어 열매를 맺게 합니다. 물론 언제, 어떤 열매를 맺느냐 하는 것은 우리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신앙인의 눈으로 보면 하느님이 그때를 정하십니다. 그분은 영원을 보시기 때문에 당신이 보시기에 가장 좋을때 가장 좋은 방법으로 결실을 내게 하실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결과에 연연하지 말고 묵묵히 희망의 씨앗을 뿌리는 것입니다. 다가오는 한 해 동안 내 가족, 친지, 동료, 내가 만나는 사람들 모두를 위해 부지런히 희망의 씨앗을 뿌리도록 노력합시다. 사람들이 지금보다는 좀 더 희망을 지니고 살 수 있도록 말입니다.

“작은 겨자씨가 큰 나무로 자라나고, 소량의 누룩이 많은 양의 밀가루 반죽을 부풀게 하는 것처럼 우리가 다른 이들을 진정으로 위하는 마음으로 한말과 행동은 희망을 심어 주어 열매를 맺게 합니다.”